처참하고 안타깝고 어처구니없는 사태 앞에선 할 말을 잃는다. 이태원 현장에 무슨 설명을 보태고 어떤 말을 덧댈 수 있겠는가. 이태원 비극을 겪고 며칠을 보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간 너무 국뽕에 취했던 건 아닐까. 몇몇 화려한 성과에 들떠 우리는 선진국 착시에 빠졌던 건 아닐까. 법을 ‘핑계’ 대기에는 이태원 참사는 너무나 심각한 무책임과 직무 태만을 드러내 보였다. 사고 전날부터 참사의 전조가 나타났고 112신고 전화가 계속 울렸지만, 경찰 시스템은 요지부동이었다. 이태원 참사 다음 날 인도에선 개보수 공사를 마치고 막 재개통한 현수교가 몰려든 인파를 견디지 못하고 끊어지는 바람에 140여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무자격 업체의 날림공사, 관리·감독 태만이 겹친 전형적 인재라고 한다. 만약 이태원 참사가 없었다면, 아마 우리는 인도에 대해서도 또 한 번 저런 식으로 냉소하지 않았을까.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중동 등 정치적 민주화나 경제적 소득 수준이 낮은 나라의 끔찍한 재난 소식들을 접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언젠가부터 우리 마음속엔 묘한 우월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린 선진국이라고 틀린 얘기는 아니다. 세계 10위 교역 규모에 국민
세계적 명소로 변신한 이태원에서 황망한 사고로 수많은 꽃다운 청춘들이 목숨을 잃어 온 나라가 충격과 슬픔에 잠겼다. 세계인에게 이태원의 명소로 각인된 해밀톤호텔 주변에서 후진국형 참사가 벌어져 나라의 자존심이 더욱 말이 아니게 됐다. 지난 29일 밤 상상하기도 싫은 대형 참사가 발생하였다. 먼저 이태원 참사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대한민국에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있다.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하면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 의무임을 밝히고 있다. 신속하고 적절한 사후 수습도 중요하지만, 사고가 나지 않도록 예방하고 모니터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더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이태원 참사 사건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지구촌의 가슴 절절한 관심과 슬픔이 집중되고 있다. 국내 언론도 그렇지만 해외 주요 언론도 이번 사건을 수많은 현장 사진과 함께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다. 정부의 책임자라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30일 사고 당일 인파가 10만 명에 육박할 것이라 예상됐지만 ‘압사 사고’ 예방책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경찰·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스트레스를 받는다’라는 표현을 의식하지 않고 쓰고 있다. 스트레스는 모두 나쁜 것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살아가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벼운 스트레스는 삶에 활력을 더하는 역할도 한다는 점에서는 괜찮겠지만 이도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스트레스를 계속 받게 된다면 이는 피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대개 스트레스는 마음의 반응 정도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트라우마는 마음에 생채기를 내어 휘젓고 그 상처가 또다시 쉽게 아물지 않게 되는 것으로 트라우마는 과거에 경험했던 충격적인 사건 사고나 폭행 등에 기인해 자신이나 타인의 신체와 정신에 있어 회복하기 힘든 크나큰 충격을 준 것으로 인해 마음 저 깊은 곳에 불안과 우울감 등을 가지고 정상적인 사회 활동과 참여가 쉽지 않아지면서 개개인이 각기 다른 다양한 증상을 나타내는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을 말한다. 그런데 실상은 트라우마에 대해 잘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의료계에서도 트라우마에 대한 진단은 DSM-5(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에서 세세하게 진단기준을 정하고 있지만 이를 어느 한
교사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아 사기를 떨어뜨리고 학생들 앞에서 설 자리를 잃게 만드는 교육이 개혁인지 나는 반문해 본다. 몇 해 전에 상당한 인기몰이를 했던 “두사부일체”란 제목의 영화가 생각난다. 깡패들 사이의 질서나 의리 따위를 묘사한 풍자와 위트가 섞인 코믹오락물이었는데 영화 내용 중에 교실 안에서 학생이 자신을 나무라는 선생을 구타하는 장면이 있다. 이 영화는 ‘교권 실추’라는 사회의 실상을 약간의 왜곡된 형태로나마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선생님의 체벌을 동영상으로 올리거나, 선행이 학부모에게 수모를 당하거나 겪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면서 교권은 이미 설 자리를 잃었다는 비애감이 들었다.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일련의 이런 현상들을 보고 우려하는 바가 크다. 이는 우리 사회가 선생님의 권위를 집단 적으로 폄하하고 묵인하는 듯 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정말 우리 사회가 여기까지 왔다면 사회의 질서 따위는 이미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늘 교사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사회 분위기도 한 몫 하지 않았나 반성해 보고 싶다. 아울러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공공장소에서는 요즈음 더욱 법도 질서도 규칙도 찾아보기 힘들다. 모두가 제 편할 대로만 행동
북한이 한국 등을 겨냥한 소형 전술핵무기 개발을 시사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런 무기 개발이 억지 차원이 아닌 실전 사용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도 이에 대응해 전략자산 배치 등 ‘거부 억지력’ 강화로 북한의 전술핵 사용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군사전문가인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21일 VOA와 전화통화에서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과 관련해 "북한이 공격을 위한 목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미한 연합전력에 절대적으로 열세인 재래식 무기를 먼저 사용한 뒤 실패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어리석은 전술’이며 김 위원장도 이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공격용이라면 “한국 등 이웃국가에 대한 공격이나 협박을 위해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억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북한은 핵 보유국임을 자임하면서 미사일 발사를 지하고 7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줄을 잇는 가운데 북한 국영 조선중앙통신은 10일 김정은 총비서가 ‘전술핵 운용부대’의 군사훈련을 직접 지휘하고 “최강의 핵 대응 태세를 유지하며 핵 전투 능력을 백방으로 강화하겠다”고 보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시동을 건 반도체 무역 제재의 바통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어받아 ‘2차 공세’에 나섰다. 이번 공세는 첨단 반도체의 수출 통제를 개별 기업 중심에서 산업 전반으로 넓히는, ‘전면전’에 가까운 양상을 띤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미국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무서울 만큼 성과를 내고 있다는 간접증거다. 미국의 전략은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이 대중 반도체 기술 제재를 위한 첫 번째 카드로 꺼낸 EUV 리소그래피 장비 수출 제재는 단순히 SMIC의 글로벌 파운드리 산업으로의 진출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시행된 것은 아니었다. 중국은 2020년대 들어 팹리스 회사가 2000개를 돌파했고, 그 숫자는 지금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그만큼 다양한 목적에서 활용될 반도체 칩의 중국 국내 수요가 계속 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집중해 오던 반도체 굴기의 기조에 맞춰, 중국은 반도체 칩의 설계뿐만 아니라 제조 역시 국산화율 제고를 서두르던 상황이었고, SMIC는 그 최전선에서 생산 규모와 기술 수준을 동시에 높여 가고 있던 회사였으므로,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회사가 타
작가 ‘톰 슐먼’은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책에서 청소년들에게 용기와 자아발전을 주는 교사 ‘존 키팅’의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교육적 태도를 기술하였다. 키팅은 학교의 전통, 명예, 규율등 최고로 여기는 가치보다는 신입생들의 자유, 이상, 희망, 용기를 키우려고 노력했다. 때로는 파격적이고 엉뚱한 이단자처럼 보이지만 학생들에게 친구처럼 다가서는 그의 용기야말로 신선한 바람처럼 여겨졌다. 학생들은 개성이나 적성이 다른 만큼 저마다 도달해야 할 목표가 다르다. 우리나라의 현실처럼 학생들의 개성보다 일류대학 진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모두가 뛰어가는 상황과는 달리, 휘파람을 불며 교실 앞문을 들어오고, 곧 뒷문으로 빠져나가더니 돌아서서 모든 학생들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하는 키팅 교사의 모습은 마치 개구쟁이가 친구들에게 놀러가자고 부르는 것 같았다. 그는 어찌 보면 학생들이 진정으로 바라고, 그들과 눈높이를 같이 하는 교사이다. 주변의 교사나 행정가가 학교의 전통을 깨트리는 행위는 하지 말라고 경고 했지만 소신과 자신감에 찬 그는 인간 심성 도약의 당위성을 먼저 생각하고 이를 실현하는 것이 그의 영원한 희망이요, 야망이었다. 현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 때 미래의 소중함도
9월 15~16일 이틀에 걸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상하이협력기구’(SCO) 22차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2001년 출범 이래 매년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그동안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보도가 거의 없었고 관심도도 높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로 2019년 이후 3년 만에 직접 얼굴을 맞대는 정상회담이 열렸는데, 지난 몇해 동안의 극적인 국제정세 변화로 인해 이번 ‘SCO 정상회담’에는 세계적 관심이 쏟아졌다. 정식 회원국 9개 나라를 합친 규모는 전 세계 인구의 약 42%, 세계 GDP의 약 24%를 차지한다. 공식적인 국제기구로는 ‘유엔’ 다음으로 규모가 큰 조직이다. 상설 사무국은 중국 베이징에 있고 의장직은 교대로 맡는데 올해의 의장국은 우즈베키스탄이다. 그래서 올해 정상회담은 그 수도인 사마르칸트에서 열렸고, 내년에는 인도가 의장국을 맡는다. 시진핑의 이번 SCO 참석은 코로나19 이후 정상적인 사회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대중국 봉쇄전략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는 신호인 셈이다. 또한 10월에 개최될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이 전례 없는 주석직 3연
현대 사회의 문화와 예술은 사람의 몸에 생명을 불어넣는 호흡과도 같다. 끊임없이 심박동하고 있는 문화와 예술은 정치, 사회, 경제 등 일상의 모든 것과 서로 연결되어지고 융화·융합되면서 지구촌 저 끝까지 강물처럼 쉼 없이 흐르고 있다. 곧 문화와 예술은 우리의 생명이자 삶이 되는 것이다. 문화를 영어로 컬처(culture)라고 발음한다. 컬처의 사전적 의미는 ‘한 국가나 집단의 문화’, ‘고유의 문화를 지닌 공동체’, ‘미생물조직 등의 배양’이다. 하지만 문화의 본 뜻은 ‘땅을 개간하다’, ‘돌보다’라는 라틴어 ‘쿨투라(cultura)'에서 파생되었다. 이는 문화가 한순간에 구축될 수 없음을 뜻한다. 문화는 농부가 한해의 풍성한 수확을 얻기 위해 척박한 땅을 갈아엎어 씨를 뿌리고, 그 씨가 발아해 열매를 맺기까지의 간절한 바람과 처절한 노동의 대가로 이뤄가는 것에 비견할 수 있다. 그러한 문화는 도시라는 공동체를 구축했고, 도시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물적 토대를 만들었다. 이처럼 인간의 흔적과 공간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문화의 특별함을 메이킹(making)함으로써 ‘랜드마크(Landmark)’란 이름으로 차별화되고 있다. 현대 사회의 랜드마크는 국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순방 외교 참사’ 논란을 부각하며 대여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말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국회에서 가결한 여세를 몰아 윤 대통령의 사과와 외교 라인 경질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외교 참사·거짓말 대책위원회’는 성명서를 내고 “워터게이트 사건의 닉슨 대통령은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라며 변명으로 일관하다 국민에게 사과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라며 “역사를 거울삼아 윤 대통령과 여당은 타이밍을 놓치지 말길 바란다”고 밝혔다. 민주당에서는 “국민의힘이 ‘외교 참사’에 대한 반성은커녕 ‘전화 금융사기’, ‘의회 독재’ 운운하며 무책임한 궤변으로 야당을 비난하고 있다”며 “국민의 힘이 집권, 여당 자격이 없는, ‘윤 바라기’ 권력 추종 세력일 뿐임을 스스로 자백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은 민망하지만, 큰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참에 윤 대통령의 말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 방송으로 접하는 대통령의 어투, 말이 짧을 때가 적지 않다. 그런 반말 투가 사적으로 들으면 친근감의 표시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공식행사에서 대통령의 언어로는 부적절하다
어느 젊은이가 하루는 랍비를 골탕 먹이고 싶은 생각이 들어 꾀를 냈다. 원래 랍비는 유태사회의 지혜의 상징이고 따라서 젊은이가 이들을 시험한다는 것은 대단히 모험적인 일이었다. 젊은이는 랍비에게 물었다. “선생님, 미친개가 쫒아 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앉아 있어야 한다.” “그럼 선생님처럼 존경받는 분들이 앞에 오면 젊은이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앉아있던 사람들일지라도 존경의 의미로 일어서서 예를 표해야 한다” “그럼 선생님, 미친개와 선생님이 동시에 오면 젊은 친구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 약간 난처해진 랍비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마침 동네 어귀에 젊은이들이 모여 있으니 자네와 내가 거기로 한번 가보세.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면 알게 아닌가?” 랍비를 골탕 먹이려던 젊은이는 자기 꾀에 빠져 보기 좋게 미친개로 몰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다소 진부한 내용이지만 삶의 지혜는 젊은이들의 열정이나 얕은 지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주는 듯하다. 지금 우리는 연령 중심의 전통사회에서 능력 중심의 사회로 전이되는 과정에 있다. 연령이 많은 사람이 경륜과 지혜의 상징이었던 시대가 가고
올해로 한국과 중국이 외교 관계를 맺은 지 30주년이 됐다. 그동안 양국은 지리적 인접성, 경제적 상호 보완성, 문화적 유사성 등에 기초해 급속한 관계 발전을 이룩했다. 수교 당시 선린우호 협력 관계에서 1998년 협력 동반자 관계로, 2003년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그리고 2008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돼왔다. 하지만 마늘 분쟁, 고구려사 왜곡, 사드 보복 등 비우호적인 일도 있었다. 양국이 공존과 협력의 길을 함께 모색해야 하지만 현재는 양국 모두 딜레마에 빠져있다. 지난 30년간 두 국가는 눈부신 성장을 일구며 동아시아를 세계 경제의 허파로 만들어 놓았다. 한중 수교 원년인 1992년에 한국의 GDP는 3천6백억 달러였는데, 2021년에는 1조 6천9백억 달러로 약 4.7배나 증가했다. 중국은 1992년 4천9백억 달러에서 14조 7천2백억 달러로 약 36.1배 증가했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의 발표에 따르면 1992년 한국과 중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각각 17위, 32위였다. 2020년 동일 지표에서 한국은 세계 3위이고 중국은 2위다. 그야말로 눈부신 성장이다. IMF 이후 2009년 세계 금융 위기 이전까지 10여 년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