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국 반도체 봉쇄…

중국의 반도체 장비 자립화 기반 기회만 줄 수도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시동을 건 반도체 무역 제재의 바통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어받아 ‘2차 공세’에 나섰다.

 

이번 공세는 첨단 반도체의 수출 통제를 개별 기업 중심에서 산업 전반으로 넓히는, ‘전면전’에 가까운 양상을 띤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미국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무서울 만큼 성과를 내고 있다는 간접증거다. 미국의 전략은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이 대중 반도체 기술 제재를 위한 첫 번째 카드로 꺼낸 EUV 리소그래피 장비 수출 제재는 단순히 SMIC의 글로벌 파운드리 산업으로의 진출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시행된 것은 아니었다. 중국은 2020년대 들어 팹리스 회사가 2000개를 돌파했고, 그 숫자는 지금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그만큼 다양한 목적에서 활용될 반도체 칩의 중국 국내 수요가 계속 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집중해 오던 반도체 굴기의 기조에 맞춰, 중국은 반도체 칩의 설계뿐만 아니라 제조 역시 국산화율 제고를 서두르던 상황이었고, SMIC는 그 최전선에서 생산 규모와 기술 수준을 동시에 높여 가고 있던 회사였으므로,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회사가 타격을 입은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구조의 연결 고리 중에서 가장 약한 부분을 정확히 노리고 타격한 것이 미국이 꺼낸 첫 번째 카드였다. 이 카드는 미국의 의도대로 적중하여 SMIC의 기술 발전은 정체되었고, 중국 팹리스 회사들의 칩 제조, 특히 10나노 이하급 공정을 필요로 하는 칩의 생산에도 덩달아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미국의 제재 조치가 시행된 지 만으로 3년도 지나지 않은 지난 7월, SMIC는 느닷없이 충격적인 소식을 발표했다. 10나노도 아니고 7나노(테크 노드 기준) 핀펫 공정으로 캐나다 소재 회사 미네르바(Miner-Va)가 생산을 위탁한 가상화폐 채굴 전용 SoC(시스템온칩)인 MinerVa 7을 생산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선단 공정 제재 조치로 인해 분명 10나노의 벽을 넘지 못했어야 했던 SMIC가 7나노 공정으로 칩을 생산했다는 것은 얼핏 보기엔 이해가 되지 않는 뉴스일 수도 있다.

 

특히 7나노 공정 기반 칩 생산은 파운드리 선두 주자인 TSMC나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기존의 4년에서 2년 이내로 좁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일각에서는 미국의 제재 조치가 오히려 중국의 기술 격차를 줄이게 만든 역효과를 낳은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사실 SMIC는 미국의 EUV 공정 기술 제재가 본격화한 지 불과 1년 만인 2020년에 7나노 공정 기술 개발에 성공했음을 발표하기도 했었다. 당시 SMIC의 7나노 공정 기술 개발 소식에 대해 파운드리 업계는 반신반의했으나, 그로부터 2년 후인 2022년 7월에 본격적인 7나노 공정 기반 파운드리 생산품이 실제로 시장에 공개된 후, 업계는 SMIC의 7나노 공정 기술 보유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2022년 7월 미국 상무부는 SMIC를 특정하여, 이 회사가 10나노(테크 노드 기준) 공정 양산에 필요로 하는 필수 장비들의 수출을 불허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조치는 단순히 SMIC가 활용해온 ArFi DUV 스캐너 수출 통제를 넘어, 선단 공정 전반에 필요한 다양한 장비의 수출을 통제할 것임을 예고하는 일이다.

 

미국이 3년 전에 꺼냈던 첫 번째 카드, 즉, EUV 스캐너의 금수 조치와는 달리, 중국 반도체 팹을 타깃으로 하는 공정 장비의 금수 조치는 오히려 미국의 의도와는 반대로 향방이 정해질,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 EUV 스캐너의 경우, ASML이 30년 이상 연구개발에 매진하여 2010년대 이후 지금까지 줄곧 세계 유일의 장비 공급 업체로 자리매김한 핵심 장비다. 현재로서는 경쟁 회사도 없고 당분간 다른 기술로 대체 불가능하다.

 

심지어 현재로서는 그 기술 격차조차 정확히 산정하기 어려운 장비이다. 그런데 다른 공정 장비는 그 정도의 격차가 나지 않으며, 대체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여전히 외국산 공정 장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역시 2010년대 들어 조금씩 장비 국산화율이 올라가고 있다. 세메스나 주성엔지니어링, 원익, S&S Tech 같은 한국 회사들의 장비가 조금씩 삼성이나 하이닉스에 채용되기 시작하면서 장비 국산화율이 올라가고 있으며, 특히 3년 전 일본의 대한국 반도체 수출 규제 이후 정부가 중점적으로 시행하는, 이른바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 사업이 확장되면서 더 많은 기업들이 장비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이런 정치외교적, 기술안보적 상황 속에서 중국의 반도체 GVC 분리 흐름은 중국으로 하여금 글로벌 시장이 아닌 내수 시장에 집중하여 산업을 보호하고 기술 추격의 동인을 보존하고 기술 혁신의 원동력을 키워가려는 계획에 더욱 집중하도록 등을 떠미는 촉매가 될 수 있다.

 

중국의 반도체 업체들은 20여 년 전 하이닉스가 놓여 있었던 환경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현재로선 기술 자립화는 요원하고, 새로운 장비를 구입하는 것은 어렵고, 그럼에도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동기는 강하게 부여되어 있다. 내적으로도 정부 차원에서 자립화, 애국을 외치는 분위기 같은 동기가 있겠지만, 생존을 위협할 정도의 외적 요인이 엄혹한 현실로 다가오면 생존은 본능이 된다. 특히 하이닉스와는 달리 충분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정부의 강력한 보호와 지원까지 더해진다면 그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다.

 

미국의 중국 반도체 산업 제재가 초기에는 핀포인트 제재에서 머물고 있었으나, 이제는 점차 산업 전방위로, 전 세대로, 전 영역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그렇지만 핀포인트 제재가 오히려 촌철살인의 효과를 낸 것에 반해, 광범위한 제재의 효과는 숨통을 끊기는 커녕 에너지만 공급하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과연 이런 미국의 기술 제재 전략이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고사시키는 제초제가 될지, 오히려 내성을 강화시켜 슈퍼 박테리아로 키울지 여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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