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대륙의 판을 흔들고 있는 새로운 국제기구 SCO

9월 15~16일 이틀에 걸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상하이협력기구’(SCO) 22차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2001년 출범 이래 매년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그동안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보도가 거의 없었고 관심도도 높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로 2019년 이후 3년 만에 직접 얼굴을 맞대는 정상회담이 열렸는데, 지난 몇해 동안의 극적인 국제정세 변화로 인해 이번 ‘SCO 정상회담’에는 세계적 관심이 쏟아졌다.

 

정식 회원국 9개 나라를 합친 규모는 전 세계 인구의 약 42%, 세계 GDP의 약 24%를 차지한다. 공식적인 국제기구로는 ‘유엔’ 다음으로 규모가 큰 조직이다. 상설 사무국은 중국 베이징에 있고 의장직은 교대로 맡는데 올해의 의장국은 우즈베키스탄이다. 그래서 올해 정상회담은 그 수도인 사마르칸트에서 열렸고, 내년에는 인도가 의장국을 맡는다.

 

시진핑의 이번 SCO 참석은 코로나19 이후 정상적인 사회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대중국 봉쇄전략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는 신호인 셈이다. 또한 10월에 개최될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이 전례 없는 주석직 3연임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그동안 코로나19 봉쇄, 부동산 및 부채 문제, 서방의 압박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가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회복함으로써 연임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로도 해석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 중국, 인도의 지도자가 한자리에 모인 회담에서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있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이번 기회를 빌려 주요 강대국들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언론에 이미 보도되었듯이, 시진핑은 전쟁에 대해 ‘의문과 우려’를 표명하였고,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지금은 전쟁의 시대가 아니다. 이번 전쟁으로 개발도상국이 식량 및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푸틴은 오히려 더 고립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게 되었다. 물론 이것이 두 나라가 러시아를 ‘손절’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국은 어차피 러시아가 승리하거나 패배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가 약화하는 것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러시아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에 인도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인도는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에 참가하고 있지만 그동안 러시아를 비판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 9월1일에는 러시아가 주도하는 합동군사훈련 ‘보스토크 2022’에도 중국과 함께 참여해, 미국 및 서방으로부터 상당한 불만을 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인도는 어느 한쪽에 기울어지지 않는 ‘전략성 자율성’을 기조로 삼고 있어서 지나치게 친러시아로 비쳐지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 ‘SCO 정상회담’을 이용해 공개적으로 러시아를 비판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창립 멤버이자 정식 회원국인 튀르키예가 SCO 가입을 희망한다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발표는 서방 국가들로부터 또 한 번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튀르키예 역시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고, 장기적으로 서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노리고 있다. 튀르키예는 인도와 비슷하게 ‘전략적 자율성’을 통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노선을 취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휴전협상을 중재하려고 노력했고 러시아로부터의 곡물 수출 협조에 가장 큰 역할을 맡았다. 이번 SCO에서는 푸틴과의 정상회담을 통해서 튀르키예 남부의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을 둘러싼 러시아 업체와의 분쟁을 해결했다.

 

다른 중소 회원국들도 민족주의 성향이 매우 강한 나라들이기는 마찬가지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거의 적대 국가이며,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사이에는 오랫동안 국경 분쟁이 존재했다. 이들은 상대방 나라가 겪는 어려움을 돕기보다는 자신의 기회로 삼는 이기주의적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나라 간에는 안보보다는 경제가 협력의 주요 대상이 되어 왔으며, 대외적 안보보다는 주로 ‘테러 및 극단주의’ 진압에 대한 협력을 명분으로 하는 일종의 ‘치안’ 협력이 중심이었다. 따라서 SCO가 기존의 국제질서에 영향을 줄 정도로 강력한 국제기구로 발돋움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SCO 의장국인 우즈베키스탄은 정상회담 기간 중에 우즈베키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철도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중 상당 부분의 구간에는 이미 각 나라의 철도 인프라가 깔려 있다. 프로젝트의 핵심은 이 국내 철도들을 국제적으로 연결하는 573km의 신규 철로다. 현재 이 구간의 화물운송에는 35일이 소요되는데, 이 철도가 부설되면 불과 4일로 단축된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은 화물 통과료 수입을 벌게 될 것이고, 불안한 말라카해협 대신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구를 서남아시아 해운의 중심지로 만들려는 중국의 계획은 힘을 얻을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싱크탱크인 ‘Lowy Institute’의 Brian Wong’은 외교 전문지 <더 디플로매트>에 기고한 글에서, 서방 국가들 “너머에 있는 세계”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러시아의 푸틴도 지금 시대를 “나머지 세계의 부상”(the rise of the rest)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 말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세계화 이후에 과거보다 나아진 경제적 발전을 기반으로 국제무대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위치를 확보하려고 노력하는 국가들이 많아진 현상은 매우 중요한 변수다.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결과로 이어질 것인지, 한국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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