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과 공존의 딜레마에 빠진 한국과 중국…

30년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동반 성장

 올해로 한국과 중국이 외교 관계를 맺은 지 30주년이 됐다. 그동안 양국은 지리적 인접성, 경제적 상호 보완성, 문화적 유사성 등에 기초해 급속한 관계 발전을 이룩했다. 수교 당시 선린우호 협력 관계에서 1998년 협력 동반자 관계로, 2003년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그리고 2008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돼왔다.

 

하지만 마늘 분쟁, 고구려사 왜곡, 사드 보복 등 비우호적인 일도 있었다. 양국이 공존과 협력의 길을 함께 모색해야 하지만 현재는 양국 모두 딜레마에 빠져있다.

 

지난 30년간 두 국가는 눈부신 성장을 일구며 동아시아를 세계 경제의 허파로 만들어 놓았다. 한중 수교 원년인 1992년에 한국의 GDP는 3천6백억 달러였는데, 2021년에는 1조 6천9백억 달러로 약 4.7배나 증가했다. 중국은 1992년 4천9백억 달러에서 14조 7천2백억 달러로 약 36.1배 증가했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의 발표에 따르면 1992년 한국과 중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각각 17위, 32위였다. 2020년 동일 지표에서 한국은 세계 3위이고 중국은 2위다. 그야말로 눈부신 성장이다.

 

IMF 이후 2009년 세계 금융 위기 이전까지 10여 년간, 한국경제의 도약은 중국의 성장을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 없다. 2002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중국은 해외직접투자를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세계 시장에 자국 상품 수출을 극적으로 확대해 왔다. 중국은 외국계 기업들의 자국 내 투자 시에 중국 내 국영기업과 합작하도록 함으로써 선진국 기업의 기술을 자국 기업이 습득할 수 있도록 했다. 내수 시장을 내어 주는 대신 기술을 습득해서 숙련노동자를 양성했다 8월 11일은 한중 수교 30년이었다. 지난 30년간 두 국가는 눈부신 성장을 일구며 동아시아를 세계 경제의 허파로 만들어 놓았다. 그야말로 눈부신 성장이다.

 

2000년대 초반 중국의 해외직접투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국가는 한국이다. 한국 기업들의 중국 현지 투자가 확대되면서 중국으로의 중간재 수출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삼성, 현대처럼 중국에 투자한 기업들이 한국 내 계열사, 부품사로부터 중간재를 수입하여 최종재를 생산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자국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면서도,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상대적으로) 양질의 최종재를 선진국에 수출함으로써 급속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동안 중국은 제조업 강국이 되었고, 경제 규모에서 미국을 바짝 추격하는 후발 국가일 뿐만 아니라 가치체계에서도 미국과 전략적 경쟁 관계에 놓인 국가가 되었다. 미국은 중국식 국가자본주의가 자유주의 시장원리와 세계 무역 질서를 교란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미국 주도권에 도전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중국제조 2025년’ 같은 전략적인 첨단 기술 투자를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우위에 대한 강력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당선 직후 ‘공급망 복원력 구축, 미국 제조업 재활성화, 그리고 포괄적 성장 촉진’이라는 문건에서 미국 내 독립적인 첨단제조업 공급생태계 조성, 제조업 활성화를 위한 투자 유치, 안정적인 중산층 일자리 창출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제시했다. 내용으로는 트럼프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큰 변화가 있다. 바이든 시대에는, 미국과 유럽이 중국의 성장을 억제하고자 하는 목표가 ‘경제패권 경쟁’에서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대한 도전’의 격퇴로 바뀌었다. 그래서 미국은 대중국 견제를 위해 ‘가치 기반 동맹’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은 중국을 자유시장 경쟁 질서를 왜곡시키는 ‘규칙 위반’ 국가로 규정한다. 실제로 중국은 급속한 성장 과정에서 자국의 기술중심 기업들에 광범위한 보조금 지급은 물론이고, 지적 재산권 침탈, 정부 주도의 인위적인 구조조정과 시장 지배력 강화 등을 통해 WTO 질서를 교란해 왔다.

 

사실 미국이나 유럽도 초기 성장 국면에서 정부가 경제에 개입했고, 지금도 첨단 산업의 성장을 위해 광범위한 지원을 했다. 중국으로서는 개발도상국 지위에서 선진국과 다른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라고 반박한다.

 

분명한 점은 중국은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G2로 분류되는 강한 경쟁력을 가진 국가이고, 국가 자본주의적 개입을 통해 다른 자유주의 세계의 기업들에 비해 경쟁 우위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은 중국을 자유시장 경쟁 질서를 왜곡시키는 ‘규칙 위반’ 국가로 규정한다. 실제로 중국은 급속한 성장 과정에서 자국의 기술중심 기업들에 광범위한 보조금 지급은 물론이고, 지적 재산권 침탈, 정부 주도의 인위적인 구조조정과 시장 지배력 강화 등을 통해 WTO 질서를 교란해 왔다.

 

한국 제조업의 글로벌 가치사슬 참여 비중은 매우 높다. 제조업 산출의 무역의존도가 높다는 의미다. 중국과 한국은 상호 전후방 가치사슬로 묶여 있다.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부품이나 소재를 수입도 하지만, 한국 역시 중국에 부품이나 장비를 수출한다. 중국은 제조업 전 분야에서 한국의 강력한 경쟁자이지만 동시에 한국 제조업 중간재의 주된 시장이고, 글로벌 가치사슬에서는 소재. 부품. 장비의 공급국가이기도 하다.

 

한국이 미국-유럽-일본의 협력체제에 능동적으로 결합한다면 중국의 견제는 강화될 것이다. 나아가 중국은 한국에 공급하고 있는 주요 소재부품을 중단하거나 대폭 줄일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된다면 두 국가 모두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한국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지정학적, 지경학적 갈등에 대해 우리는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가?

 

한국은 제조업 경쟁력 3위, 수출액 세계 8위의 중견 산업국가이다. 미국과는 군사적·정치적 동맹 관계를 유지하지만,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도 중요하다. 한국은 반도체 ICT 분야 중간재 공급사슬에서 중요한 행위자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한국이 미국과 중국 간의 지경학적, 지정학적 갈등에 어느 한 편에 서야 할 이유가 없다. 두 진영 모두 한국의 존재를 무시할 수도 없다.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합의된 자유무역과 공정경쟁의 질서를 어긴다면 한국은 이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내야 한다.

 

중국 당국이 자행하는 민주주의와 인권 억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단기적으로 대중국 수출에 장애가 있더라도 이와 관련된 원칙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안 그러면 결국 끌려다니게 된다.

 

이 원리는 동시에 미국과 유럽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타이완을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은 비단 중국의 공격적 태도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타이완을 매개로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미국이 자국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해 중국의 소비재 수출품에 대한 관세를 일방적으로 부과한 것은 누가 봐도 옹졸한 짓이었다. 미국과 유럽이 평화와 공존의 질서를 어지럽힌다면 이에 대해서도 한국은 비판적 입장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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