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명의 청춘이 죽었지만, 112묵살 정부는 어디 있었나

 세계적 명소로 변신한 이태원에서 황망한 사고로 수많은 꽃다운 청춘들이 목숨을 잃어 온 나라가 충격과 슬픔에 잠겼다. 세계인에게 이태원의 명소로 각인된 해밀톤호텔 주변에서 후진국형 참사가 벌어져 나라의 자존심이 더욱 말이 아니게 됐다. 


지난 29일 밤 상상하기도 싫은 대형 참사가 발생하였다. 먼저 이태원 참사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대한민국에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있다.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하면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 의무임을 밝히고 있다. 신속하고 적절한 사후 수습도 중요하지만, 사고가 나지 않도록 예방하고 모니터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더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이태원 참사 사건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지구촌의 가슴 절절한 관심과 슬픔이 집중되고 있다. 국내 언론도 그렇지만 해외 주요 언론도 이번 사건을 수많은 현장 사진과 함께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다.


정부의 책임자라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30일 사고 당일 인파가 10만 명에 육박할 것이라 예상됐지만 ‘압사 사고’ 예방책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경찰·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정부 측의 입장을 보면 이번 참사는 어쩔 수 없는, 예방할 수 없는 사고였다는 내용으로 소중한 생명이 끔찍하게 희생당한 것에 대한 정부의 사과 태도는 진정성이 읽히지 않는다.


참사 발생 후에도 정부의 컨트롤타워는 없었다. 사고 전 7시 45분부터 112에 압사될 거 같다는 신고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경찰은 뭉개버렸고 분초를 다투는 응급환자를 분산하지 않고 한곳으로 이송해 의료인력 부족으로 손도 써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청춘도 있었다고 한다. 


관광특구는 누구나 출입할 수 있고 내외국인이 뒤섞일 가능성 등에 대비해 경찰, 소방인력이 투입되어 치안유지를 담당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는 현 정부의 정치부재 관료주의가 낳은 인재가 분명하다. 관료가 국민을 섬기는 공복이 아니라,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 집단이 되는 것으로 국민과의 괴리는 커지고 최소한의 공감 능력마저 상실할 수 있다. 
우리나라 헌법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제7조)고 밝히고 있다. 관료들이 국민의 지배자가 아니라 봉사자로서 제 역할을 하도록 이들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최근 한국은 세계에서 어떤 이미지였을까. 적어도 한국은 ‘안전한’ 국가였다. 외국인들 눈에 한국의 치안은 대단히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치안이 좋은 나라가 후진국형 재난과 가까울 수는 없다. 거기다 K팝, K드라마, K뷰티, K푸드까지 한국의 남다름이 강조되는 문화 강국의 이미지도 퍼져나갔다. 그렇게 한국은 전 세계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특히 트렌드에 민감한 청년들에게는 한국은 가보고 싶은 국가 중 하나가 됐다. 


외신들은 이태원 참사가 “막을 수 있었던 (인재) 재난”이라며 지적하고 있다. CNN은 주최 측이 없는 자발적인 행사에 경찰이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설명하는 한국 정부의 설명에 의문을 던지며 이러한 “전례 없는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명확한 지침이 마련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수억 번을 동시에 찔린 것 같았다” 이태원 참사로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참담한 심경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 ‘자식 잃은 부모’라고는 차마 못 부르겠다. 그래서 참혹할 참(慘)에 슬플 척(慽)을 써서 ‘참척(慘慽)’이라고 한다.


세월호 참사 뒤 국민은 오로지 안전한 대한민국을 바랐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그 믿음이 무너지고 말았다.


정부는 국민의 원성이 높아지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이어 오세훈 서울시장과 용산구청장 등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이태원 사고와 관련해 공식으로 사과했다. 참사 발생 사흘 만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아직도 사과 발언은 없다. 이게 우리 정부의 현주소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나라가 슬픔에 잠긴 가운데 전국 공무원을 대상으로 행정당국이 근조(謹弔)나 추모 글자가 없는 검은 리본을 달도록 공문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자 인사처는 설명자료를 통해 “검은색 리본이면 글씨가 있든 없든 관계가 없다”라며 “근조 글씨가 들어간 리본의 달기도 가능하다”라고 수습에만 급급했다. 


중대본은 이태원 참사 관련 용어 표현도 통일하도록 했다. 이태원 ‘참사’가 아닌 ‘사고’로 쓰게 하고, ‘희생자’ 또는 ‘피해자’가 아닌 ‘사망자’ 또는 ‘부상자’를 쓰도록 한 것이다. 현 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거세지는 비난 여론을 ‘선동적 정치적 주장’으로 변질시키면서 정치적 프레임으로 몰고 가려는 시도까지 하고 있다. 과연 156명의 젊은이들이 숨진 이 참사에 대한 책임 추궁이 정치적 공세인지 묻고 싶다.


후진국형 참사가 벌어져 나라의 자존심이 더욱 말이 아니게 됐다. 오욕으로 점철된 이태원 애사(哀史)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또 하나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주인 잃은 신발들은 아수라장 같았던 참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 참혹함은 온 국민을 깊은 침묵과 탄식, 슬픔으로 빠져들게 한다. 


세월호 사태 이후 8년간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라고 입으로만 외친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현실이 아니라 나쁜 꿈이었으면, 빨리 악몽에서 깨어났으면 좋겠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하루아침에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유가족, 친구를 떠나보낸 모든 분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포토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