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목적이 무엇이든 환자 목숨을 볼모로 삼지 말아야!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시작하는 무기한 휴진에 전체 진료 교수의 절반 이상이 참여한다고 한다. 또 세브란스병원은 27일부터 전면 휴진에 들어가고, 서울아산병원 등 다른 교수들도 무기한 휴진을 논의하는 등 집단휴진이 확산할 조짐이다. 이들 교수에게는 “사람 목숨을 볼모로 삼지 말라”는 환자와 가족들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정부와 병원 측 불허 명령에도 무기한 집단휴진에 돌입했다. 응급·중환자실 등 필수 부서는 제외한다지만, 전체 교수 절반 이상이 휴진에 동참한다고 한다. 다른 ‘4대’ 병원들도 오늘부터 대한의사협회가 주도하는 집단휴진에 합류하는 걸 고려하면, 상급종합병원의 진료 공백과 그로 인한 위험은 불 보듯 뻔해졌다. 이미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으로 수술실 가동률이 60%로 떨어졌는데, 이보다 절반이나 더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발표가 환자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은 교수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천연덕스럽게 “이해해 달라”고 하니 참으로 황당하다. 교수들의 눈에 환자의 고통은 안 보이고, 전공의들의 미래만 걱정되는가. 이러니 “환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해 죄송하다”라는 말에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 와중에 의료 현장에 남겠다고 선택한 의사들이 있어 한 가닥 위안이 되고 있다. 대학병원 뇌전증 전문교수들로 구성된 ‘거점 뇌전증 지정병원협의체’는 지난 14일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의사들이 환자를 겁주고 위기에 빠뜨리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차라리 삭발·단식을 하고, 자신을 스스로 희생하면서 정부에 대항하는 것이 맞다”라며 집단휴진 불참을 선언했다. 앞서 대한분만 병·의원협회도 “팬데믹 때도 아기를 받았던 분만 장을 닫을 수 없다”라고 밝혔고 의협의 투쟁에는 공감하지만, 아이들을 두고 자리를 뜨기 어렵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선택은 단지 진료실을 지키기로 한 것이 아니라는 데 의미가 더욱 크다. 이번 파동을 거치면서 국민 신뢰는 회복이 쉽지 않을 만큼 훼손됐다. 오죽하면 28년째 루게릭병으로 투병 중인 김태현 한국 루게릭연맹 회장이 “조직폭력배 같은 행동을 보고, 죽을 때 죽더라도 이 사회의 엘리트로 존재했던 의사에게 의지하는 것을 포기하겠다”면서 “정부는 이들을 더는 용서하지 말라”고 일갈했겠는가. 환자가 의사에게 생명을 믿고 맡기기 어려운 직능 분업 사회의 신뢰 파탄은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다.


한편 의료계 집단휴진에 불참을 선언하는 의사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고 있어 환자와 그의 가족들은 희망을 걸고 있다. 전국 분만 병 의원협회 소속 140여 곳과 120여 개 아동병원이 속한 정상 진료를 하겠다고 밝혔다.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는 정부의 낮은 수가 정책 등에 불만이 컸던 진료과다. 그런데도 차마 환자를 외면할 수는 없다며 불참을 선언한 것이다. 대한의사협회가 주도하는 휴진 일인 18일에 맞춰 휴진하겠다고 신고한 전체의 4% 수준에 불과하다. 그래도 환자 곁을 지키기로 한 의사들이 있기에, ‘의사란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직업’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가 아직 유명무실해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집단휴진에 동참하는 의사들은 환자 곁을 택한 동료를 비난하기보다, 이들에게 직업적 신뢰를 빚지게 됐음을 알아야 한다.


‘뇌전증 지원병원 협의체’의 한 교수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의대 증원 문제가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가. 환자가 죽는다면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정당화될 수 없다”고 동료들을 향해 쓴소리했다. 그는 전공의들을 향해서도 “10년 뒤에 활동할 의사 증가를 막기 위해 현재 수십만 명의 중증 환자들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며. 의사로서 책임과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의료 현장에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 의료계는 이런 의사들 덕분에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아온 것이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과 관련한 의료계의 우려와 비판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힘 있는 전문가 집단의 의사 표시는 신중해야 한다. ‘환자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라는 것은 의사 직업윤리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일 것이다.


근본적으로 정부와 의료계는 이 사태를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 정부도 내년도 의대증 원안 백지화 요구는 제외하더라도, 2026년도 이후의 증원 로드맵과 개선 방안 등은 열린 자세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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