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대책 없는 공매도 전면 금지

총선용, 비판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의 힘과 정부는 5일 비공개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고 주식 공매도를 6일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갑작스럽게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표심을 의식한 여당과 정부가 ‘김포의 서울 편입’에 이어서 개인투자자들의 숙원인 공매도 한시적 금지까지 실현하기로 한 것이다. 


4일 오후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임시금융위원회를 통해 ‘증권시장 공매도 금지조치 안’을 의결했다. 이후 정부 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내년 6월 말까지 증시에 상장된 모든 종목의 공매도를 공매도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코스피와 코스닥, 코넥스 전 종목이 대상이 된다. 여당인 국민의 힘은 공매도가 거대 자본보다 개인투자자들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불만이 줄곧 제기돼 온 만큼 시스템 보완이 이뤄지기 전까지 공매도 중단은 불가피하다는 견해다. 


하지만 단순히 증시 신뢰 회복이나 공정성 확보 차원이 아니라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개인투자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거전략으로 활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을 부인하긴 어렵다. 여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김포 서울 편입 다음으로 공매도로 관심을 집중하려고 한다”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증권사 한 지점장은 “공매도가 많이 나왔던 종목들부터 시작해서 벌써 ‘공매도 금지 수혜 주 리스트’가 이미 나돌고 있는 만큼 개인들의 매수세도 당분간 바이오와 게임, 이차전지 등 관련 섹터에 몰릴 전망”이라며 “다만 우려되는 것은 기업 근본 중심의 투자로 시선을 돌리려는 시기에 이런 조치가 단행돼서 호실적 기반의 대형주로 갈 수급이 주춤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에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개인투자자의 눈치를 보며 애초 약속과 달리 공매도 금지를 두 차례나 연장했던 전례가 있다. 특히 이번엔 범유행이나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증시에 큰 충격을 주는 대형 악재가 없는데도 공매도를 다시 금지하는 것이라 여러모로 우려스럽다. 자본시장 전문가는 “오히려 중장기적으로는 증시에 자본 유입이 덜 돼 주가를 떠받치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라며 “기관투자가 등에게 공매도는 위험회피수단인데, 위험회피 포지션을 잡지 못하면 그만큼 상승에도 크게 베팅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지난달 세계 투자은행의 불법 공매도 적발 사건이 터지고 총선이 다가오자 느닷없이 공매도의 한시적 금지 대책을 발표한 건 대중영합주의씩 정책 횡포나 다름없다. 그간 주가 거품 완화 등 순기능을 해치고 국제표준에 역행한다며 공매도 전면금지의 부작용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온 금융위원회는 이날 소신을 버리고 속전속결로 공매도 금지를 의결했다. 총선을 의식한 여당 위세에 밀려 정책 소신까지 포기한 거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매도 금지 기간엔 기관·외국인에게 유리한 공매도 제도를 개선하고, 무차입 공매도 재발 방지 방안 등을 세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공매도 금지 기간 벌어질 부작용에도 대비해야 하지만 준비도 없다. 


공매도는 국내 증시에서 빈발하는 테마주 같은 주가 비정상 급등 상황에서 주가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테마주가 공매도가 금지된 중소형 종목에 집중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지 기간에 이상 급등한 종목이 제때 하락하지 않으면 내년 하반기 공매도가 재개될 때 주가가 급락할 수 있어 개인투자자 보호 대책도 선행돼야 할 것이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팔고 나중에 갚는 투자 기법이다. 주가가 내려가면 돈을 벌게 되므로 주가 하락으로 손해를 입은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매도는 주가에 거품이 끼는 것을 막고, 주가조작을 어렵게 하는 순기능이 있다. 주가가 과도하게 올랐다 싶으면 공매도 물량이 나와 주가 상승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올해 주가조작 의혹으로 하한가를 맞은 15개 종목 중 12개가 공매도가 금지된 종목이었다는 것을 당국은 명심해야 한다. 공매도가 전면 금지되면, 주가에 거품이 생기고 주가조작 세력은 더욱 횡행할 것이다.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 폐지 또는 전면적 개선을 꾸준히 요구해왔었다. 


정부와 여당은 BNP파리바와 HSBC 같은 글로벌 투자은행마저 장기간 불법 공매도를 저지른 혐의가 적발됐다는 점을 들어 공매도 전면금지를 정당화하는데, 잘못된 접근법이다. 큰 부작용 없이 더 효과적으로 불법을 막을 방법부터 찾는 게 순리다. 주식시장의 과열과 특정 주식의 거품을 막아 오히려 개인투자자를 보호하는 기능도 있다. 우리만 유독 금지하면 외국 투자자의 이탈이 우려된다. 


선진국 지수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 편입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공매도 금지가 총선을 5개월 앞둔 시점에서 갑자기 결정되면서 총선전략이라는 비판과 특히 공매도 금지가 ‘김포의 서울 편입’ 주장과 함께 총선용으로 비치고 있는 상황에서 불가피성을 명확히 밝혀야 하며 투자자들에게 이번 공매도 금지의 타당성을 이해시키려는 작업이 선행된 후 공매도 금지를 발표했더라면 총선용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공매도를 전면 허용하면서 금융기관의 내부 통제 시스템을 개선하고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친시장적 해결책이 먼저여야 하지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주식시장을 망쳐가면서까지 표만 얻으면 된다는 식의 국정운영은 여당의 자격이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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