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편에도 서지 않은 나라, 인도 이야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1년

 

정상적인 사람 중에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전쟁통에는 세상을 온통 선과 악, 흑과 백으로 갈라 볼 수밖에 없고 어느 편에도 서지 않거나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건 허락되지 않는다. 


벌써 1년 가까이 되어 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있어서도 전쟁 자체를 규탄하는 거로는 부족하고 ‘너는 어느 편이냐?’는 질문에 분명한 답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이번 전쟁에 있어 중립을 견제하고 있다. ‘국익우선주의의’ 현대적 흐름에 충실한 것이다.


“지금의 세계 질서는 아직도, 다분히, 너무나 서구 중심이다”


인도의 자이샨카르 외교장관은 뉴욕타임즈의 코헨 기자의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에 관한 물음에 “서구 중심 세계관에서 탈피할 때라”는 답을 내놓았다.


그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각 나라가 자신의 선호와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을 눈치 안 보고 당당히 추진하는 다극 체제로의 전환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2월 UN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한 목소리로 규탄하고자 했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가 여기에 동참하지 않았다. 인도는 미국과 서방의 경제 제재로 자국산 원유를 팔 길이 막막해진 러시아에 유럽 수출용 원유를 상당 부분 사들여 구세주로 등장했다. 연 7%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며, 14억 명 인구 가운데 여전히 많은 빈곤층을 줄여나가야 하는 국가 과제를 수행하는 데 에너지는 중요한 원료인 만큼 더 살 기회가 있으면 이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말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국제 사회가 한 목소리로 러시아의 잘못을 규탄해야 하는데 엇박자가 나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 자이샨카르 장관은 “우리도 원칙적으로는 당연히 국제사회의 질서가 잘 잡힌 상태를 보고 싶다. 그런데 그 질서라는 것이 만약 질서를 요구하는 쪽의 이익을 위해 질서를 요구받는 쪽은 일방적으로 희생해야만 하는 거라면 큰 문제 아닐까? 우리는 지금 질서에 관한 논의에 담긴 바로 그 부당함을 지적하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또한 그는 “유럽에서 일어난 문제는 전 세계가 신경 써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전 세계가 오랫동안 앓아 온 문제에 유럽은 얼마나 신경을 써 왔느냐”라며 유럽과 서구 중심적인 사고를 향한 비판이 이어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유럽 일대는 안보 위기가 고조됐다. 하지만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더 크게 느껴지는 건 전쟁으로 인한 안보 위기보다는 전쟁 때문에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져 생긴 부작용과 경제적 피해이다. 원자재, 식품, 에너지, 비료 가격이 올라 당장 생계가 위태로워졌는데, 전쟁에서 우리 편 들어달라는 부탁이 귀에 들어올까? 


냉전 시기 미국은 인도보다 파키스탄을 지원했고, 인도는 미국보다 소련과 가까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러시아를 향한 경제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인도를 보며 신냉전을 이야기하는 건 여전히 냉전적 사고에 갇혀 판세를 잘못 읽는 것이다. 인도는 국익에 부합하는 선택을 할 뿐이며, 그것이 미국과 유럽 국가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인도는 눈치를 볼 생각이 없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G20 정상회의가 있었다. 이때 인도의 행보를 보면, 인도가 꿈꾸는 다극 체제의 비전을 엿볼 수 있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전쟁의 원흉’ 러시아를 한 목소리로 규탄하기 위해 외교력을 집중했고 중국은 러시아와의 전략적 동맹 관계를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인도가 택한 균형 잡기는 인상적이었다. 인도는 “지금 시대에 전쟁은 어울리지 않는다.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외교와 대화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워 서방과 중국 사이에 합의를 끌어냈다. 인도가 없었다면 아마도 발리 G20 정상회의는 공동성명을 채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도는 몇 달째 계속되는 치열한 전쟁 앞에서 잘잘못을 따져 한쪽에 책임을 묻는 것보다는 전쟁 자체가 나쁘고, 그 나쁜 전쟁을 막지 못한 지금의 질서가 이제 수명을 다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했던 것이다. 


인도가 전쟁을 원하거나 지금의 상황을 반기는 건 물론 아니다. 그러나 어차피 당사국의 결정에 달린 일에 괜히 개입할 생각도 없는 것이다. 인도가 보기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수명을 다한 기존의 서구 중심 질서의 실패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태일 뿐이다.


전쟁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심화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위기, 에너지 위기가 심각해지는 등 기존 질서에서 발생한 위기는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어야만 해결될 거라고 인도는 생각하고 있다. 새로운 다극 체제에서 인도는 동서를 잇는 다리이자, 부유한 나라, 힘센 나라와 가난한 나라, 약한 나라를 잇는 고리가 되겠다는 비전을 드러낸 것이다.


인도의 비전이 성공을 거둘지 예측하는 건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내다보는 것보다 더욱 무모한 일일 것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질 때 인도가 지적한 비전에서 상황의 원인을 찾아보는 일도 의미 있을 것 같다.


인용-뉴욕타임스의 Roger Cohen 기자, 인도 자이샨카르 장관 인터뷰
조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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