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오래 살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준비할 일들

1988년 태어난 몰리 팸은 열 살이 되던 해, 당시로서는 서른 살을 넘기기 어렵다고 알려진 낭포성 섬유증 진단을 받는다. 


그러나 몰리는 최선을 다해 살았고, 프리랜서 요리사가 되었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고 결혼도 했다. 


서른 살이 되기 전 예상대로 몰리의 폐는 망가졌고, 그녀는 폐 이식을 준비해야만 했지만 2019년 트리카프타라는 약이 등장했고, 이제 낭포성 섬유증 환자들은 60대까지 살 수 있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흔한 현대과학과 의학의 성공담으로 말기 질환으로 분류되던 낭포성 섬유증은 만성질환으로 바뀌었고, 몰리와 같은 환자들은 30년 정도를 더 살 수 있게 되었다.


▶죽음으로부터 탈출하는 속도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두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하나는 의학의 발전 덕분에 사람들의 수명이 늘어나고,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는 익숙한 사실로 여기에는 우리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암에 걸린 이의 5년 생존율은 암의 종류에 따라, 그리고 진행 단계에 따라 매우 큰 차이가 있지만 지난 30년 사이 40%에서 70%로 높아졌다. 


이렇게 생존율이 올라가는 것은 단순히 몇 년의 시간을 더 버는 데 그치는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트리카프타는 몰리와 같은 이들에게 30년의 수명을 더 주었다. 하지만 그 30년이 30년에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30년은, 낭포성 섬유증을 포함한 의학계 전체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기 때문이며 몰리는 70세와 80세를 넘어 100세까지 살아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낭포성 섬유증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가 어떤 질병이나 노화를 피해 단 몇 년이라도 더 살 수 있게 된다면, 그 몇 년 사이에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 다시 남은 수명을 더 늘려줄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영생‘이라는 극히 비현실적이며 환상적으로 들리는 개념을 현실로 가져오게 되며 어느 순간, 생명공학 기술이 수명을 늘리는 속도가 노화의 속도보다 빨라지게 될 때 사람은 죽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죽음으로부터 탈출하는 속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불확실한 미래를 계획하는 일


물론 영생이 가까운 시일 내에 올 수 있을지, 아니면 아주 늦게라도 과연 올 수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문제이지만, 적어도 기대수명은 지구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계속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 사실은 칼럼 본문에서도 던진 것처럼 더욱 중요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바로,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계획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몰리의 경우 열 살 때부터 서른 살을 넘기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은 상태에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 보다 즐겁고 행복한 학생 시절을 보내는 데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은 판단일 것이라는 고민이 있었을 것이며 기대수명이 60대로 늘어난 지금도 몰리는 여전히 노후를 위해 준비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도 비슷한 질문과 고민을 늘 한다.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40대나 50대의 사람들이 치아 교정이나 눈 성형을 고민할 때 자신의 기대수명이 70세인지 아니면 100세인지는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오늘에 최선을 다하기와 죽음을 생각하기


사실 이 문제는 극단적인 경우를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내일 유성이 떨어져 지구가 멸망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다음 주가 마감인 과제를 위해 밤을 새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시간을 아름답게 보내려 할 것이다. 


문제는 미래는 늘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생각해 보면 미래에 일어날 커다란 사건들의 확률을 계산하고 자신의 선호를 고려해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물론 그 확률들을 계산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의 선호를 제대로 아는 것부터 쉽지 않은 일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의연한 격언은 직업 정신이나 장인 정신, 존재의 이유(Raison d’être)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곧 죽음을 생각하라는 것, 당장 내일 너에게 죽음이 찾아온다면 지금 하는 그 일을 하겠는가라는 질문은 죽음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두 말은 얼핏 다른 의미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내일 죽는다 해도 부끄럽지 않게 오늘을 보내라는 의미에서는 통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니엘라 라마스(Daniela J. Lamas) New York Times column.
 What It’s Like to Learn You’re Going to Live Longer Than You Expected 중

조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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