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사회적 대화’ 성공조건

 

                                          ▲전남투데이 조용 총괄본부장.

 

노사정 3자 간의 사회적 대화 개념이 90년대에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등장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중앙 단위 임금 합의가 그것이다. 정부가 적극 개입한 이 합의는 지속되지 못했는데, 노동자들에게 임금 억제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1997년 말, IMF 외환위기가 닥치고 정권 교체가 이뤄질 때 사회적 대화가 다시 시도되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참여해 노사정위원회가 출범했고,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1998년 2월 초 재벌개혁과 사회보장제도 확충, 공무원과 교원 노조 허용 등 90개가 넘는 사안에 대해 합의했다. 이때 정리해고와 파견근로의 법제화 등 노동시장 유연화도 같이 합의되었다. 이에 대한 반발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노사정 합의를 거부하고 민주노총 지도부가 사퇴했다. 이후 노사정위원회는 사회적 대화라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합의는커녕 협의도 어려운 상황

국제노동기구(ILO)는 “사회적 대화가 정부와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경제 및 사회 정책과 관련하여 이뤄지는 모든 형태의 교섭, 협의 또는 단순한 정보 교환을 포함한다”고 정의한다. 일반적인 사회적 대화의 발전 경로를 보면 정보가 초보적 단계고, 이를 통해 협의로 나아가며, 마지막 단계로 교섭을 통해 합의에 이른다. 사회적 대화가 걸음마 수준이라면, 합의를 목적으로 하는 교섭보다 충분하게 정보를 나누고 각자의 입장을 충실히 협의하는 게 중요하다. 정보와 협의를 거쳐 교섭이 이뤄지더라도 합의가 불가능한 사안을 두고 억지로 합의를 이루려 해서는 안 된다. 불가능한 것을 밀어붙여 판을 깨기보다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풍부한 정보의 제공과 성실한 협의의 실행을 거치지 않고는 제대로 된 교섭으로 나아갈 수 없다. 성공적인 교섭을 위해 정보와 협의가 충실해야 한다.

 

‘노동 존중’을 공약한 문재인정부 들어 사회적 대화가 활기를 띠는 듯했다. 민주 정부의 복귀라는 정치적 변화와 더불어, ‘투쟁과 교섭의 병행’을 천명한 지도부가 민주노총에 들어서는 등 노동운동의 조건도 변했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참여 결정이 불발하면서 사회적 대화 참여가 이뤄지지 못했지만, 기존 노사정위원회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로 개편하는 데 민주노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문재인정부의 사회적 대화 기구는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어려운 합의를 이루려 무리하게 교섭하기보다 사전에 충실한 협의와 정보 제공을 우선하기로 했다. 둘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10% 조직 노동’에 더해 청년, 여성, 비정규직 대표를 참여시킴으로써 노조로 조직되지 않은 90%에 대한 상징적 대표성을 키웠다. 이 두 가지 중요한 변화의 의미를 정부와 국회가 충분히 고민했다면, 경사노위를 통한 사회적 대화는 지금 봉착하고 있는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움직였다. 협의가 충실히 되지 않았음에도 정부와 국회가 자신들의 의제를 밀어붙였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ILO 기본협약 비준 문제가 대표적이다.

 

단계적·점진적·동시행동 방식으로 이뤄져야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노동시간 결정에서 노동자의 권한을 축소하고 사용자의 권한을 강화한다. 이러한 문제를 정부와 국회는 시기를 정해놓고 노사가 합의하라고 압박했다.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 강제노동 금지 등을 다루는 ILO 기본협약 비준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국회가 앞장서 정리할 ILO 기본협약 문제를 노사가 합의하라고 요구했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용자들은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게 노동권을 허용할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 합의는커녕 협의도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경사노위를 통한 사회적 대화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첫째 정보와 협의의 축적 없이 교섭과 합의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현실적 조건이 정보와 협의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데, 무조건 정한 시기까지 교섭을 끝내야 한다는 태도는 사회적 대화를 위기로 몰고 간다.

 

둘째, 노동기본권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먼저 해야 노동기본권이 이뤄진다는 입장이고, 사용자는 사회적 대화를 하려면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ILO는 사회적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대화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노동기본권을 먼저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셋째, ‘빅딜’보다 ‘스몰딜’의 축적이 중요하다. 스몰딜을 통해 경험을 쌓고, 이러한 스몰딜이 단계별로 이어질 때 그 종착점은 빅딜이 될 것이다. 사회적 대화는 단계적·점진적·동시행동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노동운동의 목적은 이윤 중심의 사회경제 체제를 사람 중심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사회적 대화를 둘러싼 환경이 노동에 우호적이지 않지만, 그럴수록 사회적 대화라는 틀을 활용해 노동자들이 국가정책을 협의하고 참여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노동기본권 인정이 사회적 대화의 결과가 아니라 전제 조건이 되고, 경사노위에서 무리한 합의에 집착하기보다 내실 있는 협의와 정보 제공을 우선하면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도 사회적 대화에 더욱 활발하게 참여할 것이다. 이를 통해 스몰딜들을 단계별로 축적해간다면 한국형 사회적 대화의 정착도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결국 다 사람이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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