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오페라 ‘박하사탕’, 아픔을 넘어 숭고(崇高)한 오월의 광주로…

 지난 며칠은 가슴 먹먹한 환희의 밤을 보냈다. 5월 광주, 그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마음을 베었지만 한 켠 그 상처들을 보듬어 안는 희망의 울림이 꿈에서조차 계속되는 체험이었다.


지난 5일 광주시립오페라단의 제 13회 정기공연인 창작 오페라 ‘박하사탕’을 관람했다. 무더위가 한풀 꺽인 선선한 초가을의 밤! 광주예술의전당 잔디밭을 가득 매운 발걸음들은 모두 그날을 공유하며 가슴속 샘솟는 아픔과 감동으로 눈시울을 적시었고, 열사들의 이름이 허공으로 울릴 땐 나도 모르게 하늘의 별을 헤었다.


오페라 <박하사탕>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을 원작으로 한 1980년 5월 광주, 공수부대원으로 투입된 한 남자의 사랑과 파멸을 다룬 사실주의적 비극 오페라이며 휴먼드라마로 지난 2019-2020년 콘서트 오페라로 선보인 이후, 21년 국립극장 초연을 통해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높은 관심의 입증은 물론 예술적으로도 한국 창작 오페라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한국의 현대사에 비극적인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적 트라우마(Trauma)를 남겼으며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월 광주는 누구에게나 가슴 한켠에 부끄러움을 담고 있는 아픈 진실이다. 오월 광주는 피해자들에게도, 가해자들에게도, 먼 곳에서 무지했던 일종의 방관자들에게도 결코 편해질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 연구자인 하버드 의대의 주디스 허먼은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세대의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고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서 다음 세대로 전이 된다”고 말하며 “이런 역사적 트라우마는 기억하고 증언하는 방식을 통해 역사적 상처를 드러내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치유 될 수 있다”고 한다.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은 많은 예술 작품에 영감을 주었고 문학, 시,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작품들이 태동하며 외면할 수 밖에 없었던 그날의 진실을 마주하기 위한 노력들로 이어졌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이라 여겨지는 영화 ‘박하사탕’은 우리가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아니 차마 정면으로 마주할 수 없었던 그 시간을 우리에게 펼쳐낸다. 자신의 삶이 왜곡된 현대사에 끼여 ‘박하사탕’처럼 무너지는 과정을 따라가며 결국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어둡고 비참한 광주와 동일시 하게 한다. 


그러나 오페라 ‘박하사탕’은 그 어둠과 공포를 가장 열정적으로 살아낸 이들의 삶의 아름다움을 재구성하고 비극적이고 무거웠던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상처를 아름답게 승화시켰다. 특히 명확한 우리말 대사와 더불어 속도감 있는 이야기의 전개, 인물들의 다양하고도 깊이 있는 심리 묘사는 오케스트라와 어우어져 한편의 장대한 서사극을 연출했다.


진압봉과 대검을 앞세운 무력에 저항하여 끝내는 빛으로 살아나는 생명의 고귀한 이야기안에는 미래 통합의 메시지와 함께 어두운 트라우마와 단절을 시도하며 재 탄생한 ‘희망과 사랑의 공동체’ 숭고(崇高)한 오월의 광주 정신이 있었다.


숭고(崇高)란 한자 그대로 서양에서도 높이 치솟음을 뜻한다. 칸트는 “숭고란, 절대적으로 큰 것, 측량할 수 없는 것으로 ‘절대적 위대함(absolute magnum)앞에서 느끼는 체험이다”라고 했다.


오페라 ‘박하사탕’은 아름다운 결말이나 장엄(莊嚴)한 느낌만으로 묘사할 수 없다. 나락(奈落)에서 피어난 카타르시스(katharsis)를 넘어 그 무엇과의 일체의 비교를 넘어선 숭고미(崇高美)를 전해주었다.


특히 이번 작품은 최고의 제작진과 출연진이 함께한 야외무대로 특별하고 생생한 현장감은 물론 큰 무대와 광범위한 연출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대구 오페라 콰이어 합창단’과 ‘(사)카메라타 전남 오케스트라’가 참여한 영·호남의 웅장한 앙상블은 의미 있는 통합의 메시지를 전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뮤지컬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은 인간 존엄과 사랑, 자유와 정의를 향한 열망을 노래하며 1985년 런던에서 개막 후 30년이 넘도록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다.
우리들은 ‘레 미제라블’을 통해 시대 상황에서 오는 우리 민주화 운동의 일종의 기시감(旣視感-deja vu)을 체험 한다.


아무쪼록 오월 광주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오페라인 ‘박하사탕’이 광주만이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후대의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평화와 사랑의 정신으로 기억되고 공유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더 나아가 민주·평화·인권의 도시인 광주의 정신을 계승하고 정체성을 대변하는 브랜드 공연이 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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