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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인물사> 4.19혁명, 세월이 흘렀어도 4월 "그날이 오면" 꽃잎처럼 떨어져간 동지들을 잊을수 없어,
  • 임채균 편집국장/ 대표
  • 등록 2020-12-22 21:18:07
  • 수정 2020-12-25 16: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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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9혁명 그 현장에서 나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자유를 달라" "이승만 물러가라"

4.19혁명 그 현장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다,

세월이 흘렀어도 “그날이오면” 꽃잎처럼 떨어져간

동지들을 잊을 수 없다, 찬란한 슬픔의 4월!

곡성군,곡성읍 교촌 출신 올해 82세 "최진석 선생" 4,19혁명 주도세력 중 한분,
내 나이 80넘어 유공자가 되고, 포상을 받는다 한들, 남은 세월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리고 갈꺼냐 만, 정부의 추가 포상신청에서 유공자로 인정 받는 조건에, "주도를 얼마나 했냐 아니냐" 를 놓고, 입증 자료를 주섬주섬 챙기는 나를 또한번  울리는 것에는 씁쓸함을 넘어 화가 치민다,

 전남 곡성 교촌 출신 "최진석 씨는, 4.19 당시 건국대학교 법학과 2년 재학중이였다, 태평로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든 청년 학도들은, 진압경찰의 총 칼 앞에서 "이승만 정권 물러나라" "자유를 달라" 울부짓었다,  이승만 정권의 피의 무력 진압도 결코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던 피끓는 청년 학도들의 외침을 무력화 시킬 수는 없었다,

최 씨가 오늘, 장롱 깊숙히 간직한 자신과  함께 했던 청년 동지 학도들과 함께 했던 사진첩 액자를 꺼내 끌어안고 나왔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그때를 회상해 본다,  웃고 있지만 즐겁지가 않다,  매년 거르지 않고 다가올 봄,  4월이면 피투성이가 된채 숨저 간 동지 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고통의 긴 시간을 견뎌야 한다,

국가보훈처는,2018년 4.19 혁명 유공자 추가 포상 신청을 접수 받았다 ,2.28 민주화운동과 3.15의거, 4.19혁명 당시 주도적 활동을 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분들에 대해 유공자 포상을 실시 하겠다는 취지에서 였다,

건국대학교 민주혁명 4.19회에서 최진석씨에게 수여한 기념패
유공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주도적인 활동사실”을 적시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 하여야 한다, 즉 진압 경찰에 의한 피해사실을 증명할 당시의 병원 의무기록, 붙들려가 형사재판을 받거나 했던 기록 등, 을 제시해야 한다, 강산이 변해도 몇 번은 변했을 까마득한 옛 이야기 쯤으로 만 여겨질, 그때 그시절, 몸 속에 젊은 피가 흐르는 청년 학도들의 들불처럼 솟구쳤던 봉기는 총과 칼이 두렵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조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오직 이 나라 권력이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폭정에서 “자유를 달라” 울부짓었던 것이였다, 바로 그 현장에 당시 건국대학교 법학과 2년 재학중이였던, 전남 곡성출신 “최진석,씨가 태평로 국회의사당 앞에서, ”이승만 물러가라“ 는 프래카드를 손에 들고,  맨 선두에서 외치는 모습이 담긴 빛바랜 사진첩을 넘기는 81 세 최 씨의 떨리는 손길에서 당시의 심경을 읽고도 남는다,

집회를 저지하기 위한 경찰과 청년학도들의 대치 상황, 그속에 "곡성사람" 최진석씨도 있었다,

정부는 여순사건,4.3 제주 민간인학살사건,거창양민학살사건 등 부패하고 정통성 없는 이승만 독재정권의 제물로 희생된 영영들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 4.19학생의거 당시의 역할에 대해 얼마만큼 주도 했냐 아니냐를 놓고, 전국에 생존해 있는 약 300여 명의 유공자와 추가 신청자 중, 이번에 재 신청을 준비하고 있는 "최진석씨의 4.19학생운동 유공자 선정을 두고 일각에서는, 그때 당시 투쟁 현장 최 선두 대열에 서 외치는 모습의 사진을 직접 눈으로 보왔던 지역민들은, 국가보훈처가 과연 무엇을 어떻게 증명해 달라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것 , 

 

국가보훈처는, 4.19혁명 당시 유공자중 몇분도 채 남지 않는 분들에 대한 유공자 지정을 놓고,  보훈처가 ”객관적 입증자료 미비“ 라는 통보를 받은 ”최진석 씨는, “차라리 유공자 추가 신청하라” 는  말을 말던지, 정부가 사람을 두 번 울리는 꼴이라며 섭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평생 민주화운동으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도 대한민국 국민들께 진정한 ”자유“를 선물해 주시고 떠나신 故 김대중 대통령, 故 노무현 대통령께서 살아 생전 남기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축 이다”   진정한 언론인 故 리용희 선생께서는, ”글을 쓰는 손끝이 떨려 오는 그 순간에도“ 진실을 말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론인은 "오직 진실"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사진/왼쪽에서 3번째 "최진석" /4.19의거, 태평로 국회의사당 앞 그날, 바로 코 앞에 경찰이 총을 들고 막아 설때, "나도 두려웠다" 하지만 외쳤다, "자유를 달라, 이승만 물러나라" 그떄의 사진을 담고 있다,

아직도 이나라는 어둠의 터널속에서 지난 겨울, 서초동사거리 검찰청사 앞에서 전국의 깨여있는 양심세력들이 “검찰개혁,”언론개혁“을 외쳤다, 그때나 지금에도, 우리 주변에서 수많은 ”행동하는 양심“ 들의 희생으로  지금 우리가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 이분들의 순고함에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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