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관련 테크를 주제로 칼럼을 연재하던 당시 나는 매우 불편한 글 한 편을 마주하게 됐다.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인 제시카 그로스는 벤처캐피털 기업 앤드리센 호로위츠의 홈페이지에 ‘컴퓨터가 아니라 동반자야!(It’s Not a Computer, It’s a Companion!)’란 칼럼을 썼다. 발랄한 제목과 달리 실은 기술이 인간관계에 방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글이다.
글은 챗봇을 애인이나 배우자와 같은 동반자로 여기는 사람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AI의 좋은 점은 지속적으로 진화한다는 점이다 언젠가는 진짜 여자친구보다 나아질 것” 이란 글은 ‘AI 동반자’의 실제 사례를 계속해서 나열하며, 미래에는 챗봇이 정신건강 전문가나 연애 컨설턴트, 수다쟁이 직장 동료까지도 대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오픈AI가 발표한 챗GPT 업데이트 내용을 살펴보면 앤드리센 호로위츠가 예언한 ‘비인간적 미래’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GPT-4o(‘o’는 ‘옴니omn’를 의미한다)라는 이름의 새로운 모델은 문자와 오디오, 이미지로 전달된 사용자의 지시 사항을 해석할 수 있으며, 답변 또한 세 가지 형태로 제공한다. GPT-4o에는 타자를 하기보다 말을 걸어주는 것이 좋으며, 업그레이드된 음성이 다양한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낼 수 있고, 사용자가 중간에 챗GPT의 말을 끊어도 된다고 한다. 또한, 사용자와 대화를 나눌 때 나타나는 지체 현상이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오픈AI 임원과의 화상 대화에서 웃는 표정을 통해 감정을 파악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GPT-4o는 2013년 영화 ‘그녀(Her)’를 연상시킨다. ‘그녀’에서 남자 주인공은 (스칼렛 요한슨이 목소리 연기를 한) AI 어시스턴트와 사랑에 빠진다. 인간 같은 챗봇이 외로움이나 사회적 고립 같은 감정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열광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일례로 한 AI 기업의 공동 설립자는 기술이 고립된 노인들의 삶을 개선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노인들에게 가사 도우미나 챗봇의 형태로 동반자가 제공될 수 있고, 이들이 대화나 게임, 정보 제공의 형태로 인간과 교류하며 외로움과 지루함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AI 챗봇이 유용하게 사용되는 곳이 분명히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에게 AI는 삶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이다. 그러나 챗봇이 언젠가 인간관계를 대체할 거라는 인식은 외로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온다.
‘외로움’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지만, 이를 사회적인 문제로 보고 접근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개념을 정돈할 필요가 있다. 뉴욕대학교 사회학과의 에릭 클라이넨버그 교수는 외로움이라는 개념의 복잡성에 대해 “외로움이란 다른 이들과 더 나은, 더 만족스러운 연결이 필요하다고 몸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 같은 것이다. 외로움을 측정하는 문제에 있어 어려운 점은 통상적인 건강한 외로움, 즉 우리를 소파에서 일으켜 필요할 때 세상으로 나가도록 하는 외로움과 만성적이고 위험한 외로움, 즉 우리를 소파에서 일으키지 못하고 깊은 우울과 침잠에 빠져들게 만드는 외로움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라고 설명했다.
챗봇을 외로움에 대한 잠재적 해결책으로 여기는 인식이 우려스러운 이유는 챗봇이 외로운 감정을 어설프게 덜어줘서 타인과 연결되기 위해 소파를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오히려 꺾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접촉이 없으면 고립감이 심화한다는 연구 결과도 여럿이다. 스털링대학 연구진이 2023년에 발표한 논문은 외로움을 “체화되고 맥락화된 감각적 경험”이라고 묘사하며 외로움에 대한 전체론적인 관점을 담아냈다.
실제 접촉과 시뮬레이션 접촉이 외로움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해당 논문의 공동 저자 닉 그레이는 “AI 챗봇이 일시적으로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지만, AI가 외로움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다고 단언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클라이넨버그 교수는 우리가 코로나19 때문에 강제적인 고립 상태에 놓이는 자연 실험을 경험했다며, 결론은 명확하다고 주장한다. 사람들, 특히 혼자 사는 이들은 타인과의 접촉을 갈망했다. 그는 “대면 교류와 인간 간 접촉이 없는 세상은 끔찍하다. 또한, AI 개발에 크게 투자 중인 기업들 가운데는 오히려 재택근무를 취소하고 사무실 근무를 다시 도입하는 곳이 많다며, 실은 인간 간 접촉의 가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클랜드, 듀크, 코넬대학의 한 공동 연구팀도 노인층의 외로움 경감을 위해 AI 활용법을 연구 중인데, “현 상황에서, 모든 연구 결과는 진짜 친구를 갖는 것이 최고의 해결책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클라이넨버그 교수는 “사회, 정책, 인간의 측면에서 진짜 과제는 외로운 사람들을 알아보고 관심을 가지고 돌볼 방법을 찾는 것이다. 사실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고, 우리 사회 전체가 이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는 가장 취약한 이들을 지원하는 데 돈과 시간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사회적 실패가 AI와 기술이 빈틈을 채우도록 빌미를 준 것일 수 있다.
AI 챗봇 개발에 들어가는 수십억 달러 가운데 아주 작은 일부라도 외로움 해소에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들에 투자하면 어떨까? 클라이넨버그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고립되고 외로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는 공동 주거, 공원, 도서관 등의 접근성 높은 사회적 인프라에 투자해 모든 연령대가 타인과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용: Loneliness Is a Problem That A.I. Won’t Solve,
by Jessica Gr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