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장도 게임룰도 확정되지 않은 총선

 5개월도 채 남지 않은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국회는 공전 중이다. 후보자 등록일이 12월 12일.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야 간 선거제 개편 논의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 국회는 선거의 기본적인 경쟁 규칙을 규정하고 있는 선거법 개정을 하지 않아 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들의 혼란은 물론 유권자들도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애초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소선거구제를 포함한 선거제 전반을 개혁하겠다던 호언은 물거품이 된 지 오래다. 소수정당을 빼고 거대 양당만으로 협의체’를 꾸렸지만, 여전히 비례대표 선출 방식에 관한 정략적 득실 계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당과 야당은 총선 1년 전인 올해 4월까지는 선거제 개편을 끝냈어야 했다. 극심한 정쟁을 일삼고 기득권 유지에 혈안인 거대 양당의 독식 구조를 완화하기 위해 총선에서 사표를 방지하고 비례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양당제의 폐해를 고쳐야 한다는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요구가 있었다.


현행 선거법에는 선거일 1년 전까지 선거구 획정을 비롯한 선거에 대한 기본적인 규칙을 정하게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이런 법정 시한을 무시하고 있다. ‘의원 정수 축소’라는 비현실적 포퓰리즘으로 개편 논의 자체를 무산시킨 책임은 여당에 있다. 헌정사 초유의 선거제 공론조사에서 의원 정수 확대를 통한 비례대표 증원, 사표 방지를 위한 중대선거구제 도입, 연동형 비례제 유지 등에 대한 국민 지지 여론을 확인했지만,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현재는 선거법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보는 바와 같이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둬 ‘위성 정당’이라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정당을 출현시켰는가 하면, 선거운동 방식이 현역만 유리하고 정치 신인에게는 불리한 내용으로 규정돼 있어 이에 대한 개정이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함에도 국회는 여기에 대한 개정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지역대표로 일할 국회의원을 뽑는 이번 총선은 각 지역의 첨예한 이해와 갈등을 논리·타당적이고 객관성과 형평성을 담보한 규정을 바탕으로 치러져야 하는 것이 헌법과 공직선거법의 기본 정신이다. 역대 선거에서 항상 재현돼 온 것처럼 내년 총선에서도 선거구 획정은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서 전국을 고르게 분배해 각 지역의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안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함에도 국회는 뒷짐만 지고 있다. 선거구를 나누는 것은 선거구획정위원회가 한다. 그러나 최종 결정권은 국회가 쥐고 있다. 


국회는 난제를 딛고 인구 편차를 지키면서 지역 대표성이나 문화적 동질성을 충족도록 하는 등 유권자가 공감할 수 있는 선거구를 획정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지금까지도 비례대표 의석수와 할당 방식에 대한 여야는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여당은 비례대표 선출 방식 또한 기존 연동형을 버리고 과거처럼 정당 지지율만큼 비례대표 47석을 산술 배분하는 ‘병립형’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을 제한하고, 사표가 많이 발생하며, 거대 양당 쏠림 현상이 커진다는 폐단 때문에 폐지했던 것인데, 도로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야당 또한 여당의 퇴행적 주장을 핑계 삼아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건 아닌지 의구심을 키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 의석을 줄여 비례대표 의석을 60석으로 늘리고 이를 전국 3대 권역별로 나누는 조건으로 병립형으로 환원하거나, 아니면 연동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고집하고 있다. 이러한 여야 정당 간 이견에 대해 김진표 국회의장은 지난 9일 각 정당 지도부에 대해 속히 선거제 개편 관련 의견을 정리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늦어도 11월에는 선거법 개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야 정당은 선거법 개정 논의는 고사하고 ‘입법 폭거’, ‘탄핵’ 등을 외치면서 서로 정쟁만 하고 있어 선거법 개정은 이번에도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다. 이러한 국회의 행태는 마땅히 지탄받아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21대 국회 때와 똑같은 상황으로 간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21대 선거일 39일 전, 20대에는 42일 전에 여야가 선거법 개정에 겨우 합의했다. 이번 역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지난 21대 총선 직전 양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많이 확보하려고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위성 정당을 창당하는 꼼수를 부려 양당제를 강화한 바 있다. 구태정치가 재연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정치 혐오와 불신은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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