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알고도 쉽게 못 고치는 가혹한 질병

외로움은 영혼을 짓밟는다. 연구자들은 외로움이 개인의 영혼에 남기는 상처보다 우리 사회에 끼치는 피해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발견해 왔다. 


외로움은 뇌졸중, 심장병, 치매, 갖은 염증과 자살에 영향을 미친다.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는 것만큼 치명적이며, 매일 술을 6잔씩 먹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외로움은 비만보다 건강에 더 나쁘다. 


외로움의 비교적 확실한 해결책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맺고,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이다. 


영국은 지난 2018년에 정부 산하에 외로움부를 신설해 다양한 정책을 폈다. 


영국 외로움부는 자연 산책, 함께 배우는 작곡 연습, 우리 동네 환경 미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 수백만 명이 서로 만나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는 민관 협력사업을 지원하고 관장한다.


국방부나 외교부와 비교했을 때 과연 외로움부라는 부처와 장관이 정말 필요한지 의문시했던 나라들도 영국 정부가 거둔 성과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지난 2021년 외로움부를 신설했고, 스웨덴 정부는 기존 사회복지부를 통해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그 밖에 호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정부가 외로움에 대한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서구 사회에서 매년 테러 공격이나 살인으로 죽는 사람의 숫자보다 훨씬 많다. 
그로 인해 사회는 보건과 관련해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148개 연구를 종합해 분석한 메타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인 관계를 강화하고 외로움을 줄이는 건 개인의 향후 7년간 생존 확률을 50%나 높여준다.


외로움을 치료하고 극복하는 방법은 거창하지도 않고, 첨단 기술이나 많은 예산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사실 아주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오래된 방법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밥을 먹고, 다 같이 모여 파티를 열고 서로 돕는 일에 자원해 나서는 거다.


2018년 창설된 영국 외로움부는 외로움을 극복하는 정책에 총 1억 달러가량을 썼다. 


예산은 대개 지방 정부나 지역 사회에서 시행하는 다양한 사업을 지원하는 데 쓰였다. 


노동자, 서민, 이민자 들이 집밖으로 나와 주민센터에서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점심을 같이 먹는 행사가 열린다. 


마을 사람이 함께 먹는 점심 행사를 기획한 비영리단체 푸드사이클의 소피 테베츠는 “지역 사회를 활성화하는 데 모든 걸 걸었다”라고 말했다. 


푸드사이클이 진행하는 마을 점심 등 다양한 행사에 참여한 자원봉사자 숫자만 5천 명이 넘는다.


지난 5월, 찰스 국왕의 대관식에 맞춰 영국 정부는 이날을 “큰 도움의 날”로 정하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 돕고 자원봉사 하는 날로 삼자고 독려했다. 


아주 놀랍게도 무려 600만 명이 여기에 동참했다. 


외로움 인식 주간이 있는 6월에는 영국 전역에서 “대대적인 모임”이 열린다. 


행사는 다양하다. 함께 시를 쓰고 연구하는 워크숍도 있고, 책에 관해 토론하거나 쓰레기를 줍기도 한다. 그리고 이어 펍에 모여 가볍게 한잔하는데, 그 비용은 정부가 댄다.


런던정경대학의 행동과학자 폴 돌란 교수는 “인간이란 종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다. 사람의 기대수명을 늘리는 데 가장 효과적인 사회적, 정책적 개입은 첫 번째는 금연 정책이고 그다음이 아마 외롭지 않게 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일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다른 영장류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동물로 진화했다. 그런데 부유해지면서, 즉 자원을 넉넉하게 쓸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갈수록 외로워졌다. 인류의 역설이라 부를 만하다. 


초창기에는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미디어가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고 서로 이어주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소셜미디어가 오히려 우리를 더욱 깊은 고독에 빠트린다는 것이 전문가들 사이의 중론이다.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게시물을 보고, 절망에 빠진다. 


화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지면 곧 다른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교류하는 시간은 줄어든다. 


이런 여러 가지가 한데 얽혀 지난 10여 년간 젊은이들이 겪은 정신건강 위기의 원인이 됐을 것이다. 


흔히 외로운 사람들은 주로 나이 든 사람일 거로 생각하지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의 비중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늙은이들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지난봄 미국 의무총감인 머시 박사가 펴낸 81쪽 분량의 보고서 “외로움과 고립이라는 우리 시대의 전염병”에서 외로움을 담배, 비만, 중독에 비견했다.


“외로움은 단지 기분이 좋지 않은 것보다 훨씬 심각한 질병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질적인 조처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프고 잔뜩 화가 난 채로 이 괴로움을 털어놓을 데를 찾을 수 없는 궁지로 점점 더 내몰리고 말 것이다”


머시 총감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잘 맺을 수 있는 사회적 구조를 강화하는 것이 외로움에 맞서는 전략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런 구조란 공원, 도서관 등 물리적인 시설일 수도 있고, 자원봉사자나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과 열정이 있는 사람들을 한데 묶어낼 수 있는 사회적 연결망일 수도 있다. 


인구가 3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영국의 프롬이라는 마을에서는 무려 1,100명이 공동체를 꾸리는 사람들(community connectors)이라는 자원봉사자로 등록돼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은 마을 사람들과 수시로 연락하며 마을 행사가 있으면 잊지 말고 참석하시라 권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는 일이다.


외로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물리적인 시설의 사례로 영국이나 스웨덴, 호주에 도입된 “수다 떠는 벤치(chatty bench)”가 있다. 


공원에 설치된 이 벤치에는 “지나가는 낯선 사람과 즐겁게 수다 떠실 분들을 위한 자리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야기 카페(talking cafes)”도 있다. 일행 말고 모르는 사람끼리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카페다. 


우리가 진화한 대로라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별것 아닌 계기만 있으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먼저 다가가고 말을 건다. 그렇게 해서 외로움이라는 무서운 질병에 효과적으로 맞서 싸울 수 있다면, 더욱 적극적으로 이 방법을 장려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현재 세상 사람들은 고독한 군중이다. 원자화되고, 양극화됐으며, 중독돼 있고, 괴로워한다. 우리의 행복과 건강, 웰빙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수많은 연구와 경험들이 가리키고 있다. 


바로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다른 사람이다.

 

 

인용 : We Know the Cure for Loneliness. So Why Do We Suffer?
By Nicholas Kristof 
of The New York Times

조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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