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선 민주당… 국민의힘도 안심할 수 없다

 국회가 백현동 개발특혜 및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을 찬성 149표, 반대 136표, 기권 6표, 무효 4표로 가결시켰다.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처리는 헌정사 초유의 일이다.

 

사실 표결 결과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대표가 단식 중 체포동의안 부결을 호소하는 메시지를 내는 순간, 그의 정치생명은 (적어도 상당기간 동안) 끝났다. 검찰이 한두 번의 우여곡절에 가던 길을 멈출 리 없고, 정치생명이 다한 ‘부결 호소인’을 당대표로 두고 총선을 치르려는 국회의원도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 섰던 이 대표는 스스로 자멸의 길로 들어섰다.


이제 민주당의 운명은 구속영장 실질 심사다. 심사는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판단한다. 유무죄를 묻는 판결과는 다른 결정이다. 수사의 모든 정황, 증거, 증언을 종합적으로 살핀다. 당연히 유무죄에 대한 심리적 판단도 개입된다. 바로 이런 사법 절차가 ‘모든 이재명 사건’을 통틀어 처음으로 개시된 셈이다. 그 결과에 따른 정치적 파장이 엄청날 것이다. 당리당략으로 미리 정해진 국회 체포동의안 처리 때와는 비교도 못할 파급력을 가질 것이다. 그 긴 시간, 의혹은 언론과 검찰·경찰에 있었다. 사법의 영역에서 결정 또는 판결된 사실이 없다. 300여곳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었다.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발부되는 영장이다. 의혹 본질에 대한 판단이라 볼 수 없다. 2월 처음으로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됐다. 사법부 판단으로 가지 못했다. 관련자들 재판에서 거론된 적은 있다. ‘사건 외 이재명’에 대한 간접 판단이다. 


단식을 중단한 이 대표는 병원에서 회복식을 먹으며 입원 치료 중이다. 영장심사에 나가겠다는 이 대표의 의지는 강한 것으로 전했다. 영장심사는 판사가 구속 여부를 판단하기 전에 피의자를 직접 불러 혐의를 따져 묻는 절차다. 피의자가 법원에 입장을 전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이 대표는 여러 차례 출석을 언급했다. 이번 영장심사에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검찰은 ‘이 대표의 혐의가 중대하고, 구속을 하지 않으면 증거를 없애거나 증인을 회유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의 구속 여부는 오늘 밤이나 내일(27일) 새벽쯤 결정된다. 친명(친이재명)계와 비명계는 영장 심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영장이 기각될 경우 친명 체제가 공고화될 가능성이 크다. 친명계는 이 대표가 검찰의 부당한 수사에 맞서 살아 돌아왔다고 주장하며 총선을 ‘야당 탄압’에 대한 저항이라는 기조로 치른다는 방침이다. 당 지도부가 이미 가결표 의원들에 대한 숙청을 예고한 만큼 공천 배제를 밀어붙이는 등 징계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한 친명계 의원은 “지금이야 반란표 진압을 위해 징계 등을 거론하지만, 이 대표가 통합적 당 운영을 약속한 만큼 총선을 앞두고 비명계에 손을 내밀 수 있다”고 했다. 영장이 기각되면 이 대표 중심으로 당이 빠르게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도 하고 있다.


그럼 윤석열 대통령은? 그의 정치적 맞수인 윤 대통령은 승리했는가? 전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대표 다음 차례로 벼랑 끝에 선 사람은 윤 대통령 본인이다. 물리적 권력에 대한 대통령의 장악이 강화되고, 권력의 짜릿한 손맛이 승리에 대한 환각을 주입할수록 대통령과 국민 간의 거리는 더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최근의 상황은 ‘통제되지 않는 권력의 방자함’을 절감하게 한다. 조자룡 헌 칼 쓰듯 이곳저곳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 감사원의 무모함은 너무 일차원적이어서 소박해 보이기까지 한다. 국민권익위원회, 금융감독원을 향했던 감사원 감사 결과는 사실상 빈손이었다. 최근에는 통계조작을 이유로 전 정부 인사 상당수를 굴비 엮듯 엮었지만, 과연 그 실상이 ‘국기문란’에 해당할 정도라고 느끼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을 보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표정도 밝지만은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내부 갈등 사태 향방을 관망하며, 민생·정책을 강조하는 로키 행보를 취했다. 여당 일각에선 ‘이재명 없는 민주당’과 상대하게 되면 반사이익이 사라져 국민의힘에 진짜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한테는 위협적 변화가 시작됐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유의원은 “윤 대통령 입장에서도 그동안 이 대표를 만나주지도 않고 아주 형편없는 사람으로 대화 상대도 안 되는 것 같이 치부하면서 이렇게 막 거부권도 행사하면서 끌고 온 거 아닌가”라며 “그런데 주적이 사라졌으니 윤 대통령 입장에서도 국민의힘의 입장에서도 위기”라고도 했다. “적이 사라진 공간에서 더 이상 윤 대통령이 민주당을 적으로 규정할 명분이 사라져버린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당 지도부는 의원들에게 입단속을 주문했다. 민주당 내홍에 섣불리 대응했다가 야권 지지층과 중도층의 반감을 키울 수 있어서다. 윤 원내대표는 전날 국회 본회의 후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앞으로 갈 길이 첩첩산중이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됐다고 너무 좋아하지 말고 언행을 조심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민주당이 당 대표 리스크가 사라지면 여당에 호재가 아닌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그간 이 대표 사법 리스크를 주된 민주당 공격 소재로 활용했는데도 지지율에서 민주당에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민주당이 당분간은 혼란을 겪겠지만, 내홍을 수습하고 혁신에 나서면 이에 대응할 새로운 전략이 필요 할 것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전날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이 대표가 만약 구속이 안 되면 그때는 역으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정권의 위기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속영장이 발부될 경우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생명은 사라질 수 있다. 반대로 기각될 경우 윤석열 정부가 받을 타격은 상상 이상일 수 있다. 이런 권위와 파괴력 있는 절차가 2년 만에 눈앞에 왔다.


이대표의 체포 동의안이 가결된 이후 민주당 내부가 폭격을 당한 듯 혼란스럽다. 그러나 큰 흐름은 이재명 체제 고수냐, 탈 이재명 체제로의 전환이냐의 두 갈래다. 정치적 먼지가 가라앉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체포동의안 가결을 계기로 비명계는 이 대표의 퇴진을 요구하고, 이 대표와 친명계는 이에 맞서 ‘옥중공천도 불사한다’는 식의 버티기에 들어갈 공산이 크다. 총선을 반년 앞둔 상황에서 분당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는 극심한 내홍에 빠질 우려가 커진 것이다.

 

민주당의 운명도 중대 국면에 처했다는 걸 직시하고, 강성 지지층을 다독이면서 당이 분열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성찰과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내홍 수습에 민주당의 운명이 걸려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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