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한미 정상회담과 반도체

수동적 ‘후수’ 보단 능동적 ‘선수’를 두어야…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지형을 자국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 미국은 반도체법을 필두로 다양한 정책을 하루가 다르게 구체화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월 26일 미국을 방문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윤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걱정의 목소리가 높다. 한일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일방적 ‘퍼주기’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큰 탓이다.


최근에 공개되고 있는 미 반도체법의 세부 사항 중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 입장에서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은 한국 반도체 회사들이 보유한 반도체 팹의 향후 운명에 대한 조항이다.

 

팹의 현황과 앞으로의 변화는 현재의 반도체 산업 전환기 속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고민해야 하는 변환 전략과도 맞물리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을 설계하고 상황에 맞게 만들어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미 정상회담의 테이블에는 한반도 긴장 완화를 비롯해 미-중 기술 패권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한미일 협력 관계 등 굵직굵직한 의제들이 놓일 예정이다. 이 가운데 경제 이슈와 관련해선 단연 ‘반도체’가 관심사다.


미-중 패권 전쟁으로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질서가 대전환을 맞는 상황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이익을 지키고 헤게모니를 확장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할 자리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기술 패권 전쟁에서 미국의 진정한 노림수는 눈에 보인다. 미국이 1990년대 이래 정착된 글로벌 분업 체계와 글로벌 공급망을 중단하고, 미국 본토 안에서 반도체 산업의 ‘A부터 Z까지 모두 이루어지게 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음은 이제 잘 알려져 있다.  현재를 넘어 미래를 장악하는 전략이다. 그리고 이런 미국의 중장기적 구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마련해야 한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가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양사는 중국에 투자한 반도체 팹은 매년 수백~수천억 원 단위의 시설 투자, 팹 확장, 장비 업그레이드 등을 통해 각각 수십조 원 규모의 자산 가치를 갖는 대형 팹으로 성장했다.

 

그러한 투자는 지난 20년간 수백 배로 성장한 중국의 반도체 산업 시장에 훌륭하게 대응하면서 한국 메모리반도체의 글로벌 시장 지배력 강화에도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중국 현지 팹의 업그레이드와 운용에 대해서 미국의 반도체법 보조금 수혜 여부가 중요한 정책적 요소로 대두되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양사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메모리반도체 업계에서의 지배력을 보존하기 위해 다음 팹 투자의 배분을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2023년 상반기 현재, 중국 현지의 한국 메모리반도체 팹은 삼성전자의 시안 팹(X1, X2 라인)과 하이닉스의 우시 팹(C2, C2F 라인), 그리고 하이닉스의 다렌 팹(인텔의 Solidigm 라인)이다. 삼성전자의 시안 팹은 낸드 플래시 전용으로서 글로벌 점유율 14.3%를 차지한다. 삼성이 생산하는 낸드 플래시의 40%에 달하는 비중이다. 


DRAM 분야 중국의 선두 주자는 CXMT인데,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1% 미만이며, 그나마도 하이닉스나 삼성전자에 비해 기술 세대 수준은 2.5~3세대 벌어져 있다. 중국에서 향후 수요가 더 급증할 차세대 메모리반도체를 중국 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은 사실상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미국이 대중 제재 조치를 한국 메모리에 대해 점차 전방위로 적용할 것임은 충분히 예견되는 일이다. 


메모리반도체 생산 자체만 놓고 봐도, 한국의 대미 협상 전략의 이점은 또 있다. 대만이나 일본은 미국에 삼성전자나 하이닉스만큼의 신규 메모리반도체와 파운드리 팹을 건설할 수 있는 계획이 없거나 약하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3나노급 파운드리 팹을 신규 건설하고 있지만 팹의 규모는 삼성전자에 미치지 못한다. 2020년 이후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를 놓고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각국은 반도체 산업을 경제적 가치가 아닌 안보적 차원에서 더 우선적으로 정책적, 정치적 고려 대상에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반도체가 아닌 첨단 산업들이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지기 전에 첨단 반도체에 대한 자급도를 조금이라도 높이는 방향으로 각국의 정책 기류는 급격하게 바뀌고 있으며, 이는 반도체 산업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법을 통해 제일 우선순위로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반도체 제조 능력의 일부 확보, 혹은 리더십 탈환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 이면에는 미국의 경제안보적 전략 판단이 있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이 더 공격적으로 요구해야 하는 것이 있다.

 

미국이 주도할 것이라고 선언한 차세대 반도체 소재, 소자, 아키텍처, 공정 등의 각 분야 기술 표준 선도에 핵심 이해관계자로서 같이 참여하는 자격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은 이러한 협상 과정에서 역으로 이른바 ‘NSTC Korea’를 수도권 이남의 메가 클러스터로 유치하는 것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하며, 그 근거가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2022년 한국 수출의 18.8%를 차지할 정도로 이미 국가 기간산업으로 자리 잡은 반도체 산업은 앞으로는 메모리반도체 일변도의 전략에서 벗어나는 경로를 취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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