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피해자, ‘신고해도 달라지지 않아’ 신고 꺼린다

가해학생 심의 불복, 피해자의 9배

 국가 수가 본부장에 임명됐다가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 조사에 제출한 사과문이 공개됐다.

 

지난 2018년 민족사관고등학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에는 모두 2차례 서면 사과문이 제출된것에 불과했다. 


정 씨는 사과문에서 “피해자가 집에 돌아간 후 저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됐다는 걸 알게 됐다”며 “제가 인지하지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들이 피해자를 힘들게 했다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안타깝고 미안하다”는게 전문이다. 당시 학폭위 회의록에 따르면 위원들은 “서면 사과의 양이나 필체를 보면 정성이 전혀 안 들어가 있는 듯하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A4 용지 3분의 1 정도로, 제대로 된 서식 없이 써 가지고 올 뿐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교내 학교폭력대책위원회에서 처분을 내리는데, 이 처분 결과에 이의가 있으면 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하거나 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청구할 수 있다. 같은 기간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행정심판 청구는 2020년 175건, 2021년 392건, 지난해 447건이었다. 행정소송 청구 건수 역시 2020년 5건에서 지난해 34건으로 집계됐다. 가해 학생이 심의 결과에 대한 불복절차에 돌입하는 때가 피해 학생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될 것을 우려하는 가해 학생이 많아서다.


학생들이 학교폭력 피해를 신고하지 않는 주요한 이유가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인 것으로 나타났다. 2일 공개된 최근 6년간 교육부의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런 이유를 꼽은 고교생의 응답 비율이 2018년부터 4년간 해마다 가장 높았다. 2022년 조사에서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서’라는 응답자가 29%로 최다였으나 ‘소용이 없을 것 같다’는 응답도 27.1%로 비슷하게 많았다. 학교폭력 피해를 겪고도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기대가 낮아 신고를 꺼리는 것이다. 학교와 당국이 신속하고 엄정한 처분에 대한 믿음을 주지 못한 탓이다.


학교폭력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학생은 늘었지만, 교사·학부모·다른 친구 등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 고교생의 경우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치 자체가 낮은 것으로 해석된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학교폭력 목격 후 방관했다’라는 응답 비율이 전체적으로는 줄어드는데 고등학생의 경우에만 증가 추세를 보이는 점이 눈에 띈다. 2018년 30%를 넘은 뒤 2022년 35.7%로 늘어났다. 타인의 피해를 보고도 모른 체하는 것 또한 학교와 당국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증거다. 자신의 피해를 털어놓지 못하고 동료의 피해에도 침묵하는 학교 현실이 개탄스럽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별일 아니다’라는 이유가 30% 안팎으로 가장 많았다. 학교폭력이 심각한 문제라는 경각심을 환기해야 한다. 학교폭력은 피해 학생과 가족은 물론이고 공동체에 상처를 안기는 사회문제다. 가해자는 엄벌을 받고 피해자는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 수가 본부장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사건은 이런 원칙이 구현되지 않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가해자는 학교폭력으로 전학 처분을 받고도 소송전으로 시간을 끌며 명문대에 진학했고, 피해자는 지속적인 폭력 피해로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한 부조리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게 현실이라면 누가 엄정한 처분과 피해자 구제를 기대할 수 있겠나. 학교폭력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낫겠다’는 피해 학생들의 심정을 당국은 헤아려야 한다.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 ·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력, 모욕,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 공갈, 강요, 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 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 ·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주는 모든 행동을 지칭한다.

 

최근 학교폭력 경향은 그 나이는 낮아지고 있으며 소셜미디어 등의 발달로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SNS 를 이용한 신종 학교폭력이 등장하고 있으며, 수위나 강도가 매우 높아지고 있고 저연령화 추세가 심화하면서 폭력의 방법도 날로 조직화, 지능화, 상습화, 흉포 ·잔인해지고 있다. 학교폭력 후유증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학폭 피해자들이 숨고 있다. 


대한민국 청년 100명 중 2~4명은 방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고립·은둔 상태다. 일반적으로 정서적 또는 물리적 고립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할 경우 ‘고립’ 상태에 놓였다고 본다. 고립된 상태에서 외출이 거의 없이 본인의 방 또는 집안에서만 6개월 이상 생활하면 ‘은둔’하고 있다고 정의한다. 소위 말하는 ‘은둔형 외톨이(은톨이)’다.
현재와 미래를 책임져야 할 청년 세대가 휘청거리면 사회 전체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활력도 잃게 된다. 경제구성원으로 제 몫을 하지 못한 채 주변만 겉도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심각성은 커진다. 


교육부는 ‘정순신 사태’를 계기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마련해 이달 중순 이후 발표할 예정이다. 이전에도 학교폭력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대책을 쏟아냈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이번에야말로 허술했던 가해자 관리를 엄정히 하고 피해자 보호를 확대할 실효성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교육 현장에서 학교폭력 처리가 제대로 됐는지 투명하게 검증하는 방안도 빈틈없이 세워야 한다. 피해 학생들이 신고를 꺼리는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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