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선거구제가 아니라 대선거구제를 생각할 때

 대통령이 선거제도 개혁안을 던졌다. 


제안의 의도를 의심하거나 진실성을 따지기 전에, 어쨌든 현재의 소선거구제에 대한 ‘개혁안’을 먼저 대통령이 내놓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선거제도 개혁안은 실은 민주당이 먼저 제시했다고 말한다. 


당론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중대선거구제를 포함해서 유사한 법안들을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해 발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선거제도 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할까? 일각에서는 ‘대선거구제가 답’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이 중선거구제에 대해 제기되는 여러 비판을 극복하고, 중도파 유권자들의 정치적 효능감을 높일 뿐 아니라, 비례제의 다양성까지 포괄하는 현실적 대안이라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로 선거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실 이 주장은 민주당 의원들이 먼저 했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21대 국회 들어 민주당의 김상희·박주민·이상민·전재수·이탄희 의원이 각각 중대선거구제 도입이 포함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다.


‘비명계’가 많은 민주당 최대 모임인 ‘더좋은미래’도 중대선거구제가 포함된 3가지 안을 준비해 토론회를 거쳐 입장을 정리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제도개혁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한다.


국민의힘에서 수도권 의원들은 윤 대통령의 제안에 별로 비토가 없다고 하지만, 대통령 발언 후 일단 국민의힘은 반대 의사를 밝혔다. 


21대 총선에서 많은 의석수를 얻지 못한 국민의힘은 현재 전체 지역구 93석(비례대표 포함 115석) 중 영남권(부산, 대구, 울산, 경북, 경남 합산) 의원이 58명에 달할 정도로 영남 비중이 높다.


많은 정치인들, 국회의원과 정당인들은 제도적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느낀다. 


이 가운데 권력구조 개편은 ‘개헌’ 이슈에 해당하고, 선거제도 개편은 ‘선거법 개정’ 이슈에 해당한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같은 기구가 구성되거나, ‘개헌 연대’가 언급되면 이 논의에 대한 의원들의 집중도는 높아진다.


그러나 정치개혁 의제는 유권자들의 관심에 잘 와 닿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해주길 바란다. 


이른바 ‘민생’ 문제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민생문제에 대한 의정활동을 하다 보면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느낀다.


정치개혁이 선행되지 않으면 민생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는 것이다. 


그래서 민생에 더 열심인 정치인들이 먼저 정치개혁 문제를 꺼내 들게 되는데, 그것이 역으로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개혁이라는 딜레마,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상황인 셈이다.


유권자가 현 제도에서 느끼는 효능감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정치영역에서 ‘효능감’이란 ‘나의 정치적 선택이 정치인 및 정치세력을 움직이고, 이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신념 혹은 기대감’에 해당할 것이다. 


현시점에서, 경험적인 분석에 따른 한국 유권자들은 현시점에선 내각제를 원하지 않는다. 


또한  아직까지는 국회의원 정수 확대를 용인할 생각이 없으며  비례대표성을 강화하는 일에도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한국 유권자들이 대통령제를 내각제보다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통령은 유권자가 선출하지만, 내각제의 총리는 의원들이 뽑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정치개혁이란 것이 성립하려면 ‘이상적인 민주주의 원칙’이 아니라 ‘우리 유권자의 인식과 욕망을 설득할 수 있는 제안’을 내놓아야 한다. 


개헌안에 대해서도 그러하고 선거법 개정 문제에 대해서도 그러할 것이다.


선거법 개정 문제에 대해선 ‘지금까지의 모범답안’이 존재한다. 


정치학계와 진보 진영의 합의에 가까웠던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그것이다. 


이는 현행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라는 경로는 인정하되, 여기에 정당명부 투표의 비례대표성을 강화하여 다당제 요소를 끌어들인다는 것이었다.


현재의 정치 지형에 크게 낙담하고 실망하는 중도파 유권자들이 이 제안의 장점을 깨닫고 더 큰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면, ‘거대 야당 민주당의 약간의 손해’와 ‘대통령의 나름의 소신’이 결합하여 이번 총선을 다른 ‘룰’로 치르게 될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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