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곡(歌曲), 바람 타고 마음에 머물다

광주시민회관을 기억하십니까? 

 

지금은 청년들의 창업활동을 지원하는 로컬 창업공간으로 쓰이고 있지만 한때 광주시민회관은 호남 최대의 문화복합공간이었다. 1971년에 문을 연 시민회관은 수많은 공연이 개최되었고 때로는 결혼식 예식장으로, 영화관으로 시민 문화향유를 위한 쓰임에 부족함이 없었다.

 

1987년 11월 어느 날, 그곳에서 ‘가을 가곡의 밤’이 열린다는 소식에 필자는 일주일 전부터 가슴 설레며 그날을 기다렸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었지만 시험은 하등 문제가 되질 않았다. 나의 스타, 테너 신영조 선생님이 출연하는 음악회다.

 

공연은 7시에 시작하는데 마음이 바쁜 필자는 4시도 되기 전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인지라 매표소에 안내하는 사람도, 경계의 시선도 없었다. 필자는 홀리듯 공연장에서 새어나온 불빛을 따라 걸어 들어가 한쪽 의자에 앉았다. 조금은 어두운 공연장을 이리저리 살피던 중 리허설이 시작되었고,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어느 누구도 나라는 존재를 의식하지 않았기에 일원의 한사람처럼 뻔뻔하게, 오히려 두근거림을 즐기고 있었다.

 

몇몇 출연자의 순서가 지나고 신영조 선생님이 피아노 옆으로 걸어 나오시더니 반주에 맞춰 노래를 시작했다.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고 눈이 번쩍 뜨였다. 모든 감각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먼 산을 호젓이 바라보면 누군가 부르네. 산 너머 노을에 젖는 내 눈썹에 잊었던 목소린가~” 유경환 작시에 박판길 작곡인 <산노을>이란 가곡이다. 청아하게 울리는 그 만의 미성은 어두운 시민회관을 흔들었고 “바로 내가 신영조야”라는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L. Pavarotti, 1935~2007)보다, 플라시도 도밍고(P. Domingo, 1941~)보다, 호세 카레라스(J. Carreras, 1946~)보다 훨씬 멋져 보였고 내 인생 최고의 노래였다. 아직도 그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처럼 어느 천재의 포이에시스(poiēsis), 즉 예술적 창조활동은 수많은 음악가들에 의해 감동을 만들어 내고 기쁨과 추억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예술은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상상력에 의해서 이뤄진다. 이러한 예술행위는 영적인 발로이며 단순 모방과 같은 미메시스(mimēsis)가 아닌 영감의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 다 가곡이라 말할 수 있지만 서양의 클래식 가곡은 성악곡의 한 장르이며, 대략 7세기경부터 교회음악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낭만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슈베르트(F. P. Schubert, 1797~1828)에 의해 ‘겨울 나그네’, ‘마왕’, ‘송어’, 등의 작품으로 예술가곡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한제국 말기 쯤, 찬송가의 보급과 문학작품에 곡이 더해지고, 국민적 정서와 양식에 공감을 받으면서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비록 짧은 성장기를 거쳤지만 오늘에 이르러서는 여러 장르와 융화되어 ‘아트 팝’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가곡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대를 처음 본 순간이여 설레는 내 마음에 빛을 담았네. 말 못해 애타는 시간이여, 나 홀로 저민다~” 김효근(1960~) 선생이 작곡한 <첫 사랑>과 같이,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있는 아트 팝은 이 시간에도 많은 젊은 작곡가들에 의해 창작되고 있다. 최근 들어 각 방송국에서 송출하는 크로스오버 경연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면서 다양한 형태의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훌륭한 가수들이 가곡을 여러 버전으로 노래하면서 K-가곡의 새로운 붐을 일으키고 있기에, 언젠가는 독일 가곡이나 프랑스의 상송, 이탈리아의 칸초네처럼 지구촌 각지에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플라톤은 『국가』에 수록된 <음악의 탄생>편에 “음악에서 가사는 지혜와 용기를 비롯해 절제를 기르는데 도움이 되어야 하고 리듬과 조성은 가사의 내용이 영혼 깊이 파고들게 만들어 고상한 성격 형성에 도움을 주어야한다”고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가곡은 가사가 시의 율격에 맞춰 작사 되고 한국적 색채와 주옥같은 서정성을 띄면서, 특히 민족의 애환이나 정서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그 중요성은 어떤 음악과도 견줄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가곡은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인문적 예술이다. 또한 음악은 보편적이고 상대적이면서 주관적이라 할 수 있기에 우리가 즐겨 부르는 가곡은 우리만의 감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 저녁, 필자는 김효근 선생이 1981년 서울대학교 3학년 재학 중에 작곡한 <눈>이란 노래를 마음으로 불러본다. 이곡은 ‘제1회 MBC 대학가곡제’에서 서울대학교 음악과 1학년, 조미경 학생이 불러서 대상을 수상했다. “조그만 산길에 흰 눈이 곱게 쌓이면 내 작은 발자국을 영원히 남기고 싶소. 내 작은 마음이 하얗게 물들 때까지 새하얀 산길을 헤매이고 싶소. 외로운 겨울새 소리 멀리서 들려오면 내 공상에 파문이 일어 갈 길을 잊어버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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