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투데이 박수경 기자 | 현실과는 거리가 있을지 모른다. 가능성도 물론 거의 없다. 그러나 꿈꾸고 싶다. 환상의 세계일망정 구단주가 되어 나만의 축구 팀을 만들 수는 없을까? 내가 선택한 선수들로 팀을 꾸려 경기를 치르는 생각에 젖는다. 한때나마 행복함이 밀려온다.
그대만의 바람이 아니다. 열렬한 축구팬이라면 한 번쯤은 가져 보고 부풀렸을 꿈이다. 열망은 이뤄지듯이, 그 염원은 구현됐다. 실상으로 나타난 환상(Fantasy)이다. 곧 판타지 프리미어리그(FPL)다. 축구의 종가(宗家)답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가 내놓은 빼어난 작품이다.
FPL은 EPL사무국이 홈페이지를 통해 운영하는 시뮬레이션 게임(Simulation Game)으로 전 세계적으로 700만 명 이상이 즐길 만큼 열풍에 휩싸여 있다. 처음 참가할 때 주어진 1억 파운드(한화 1,572억 원·이하 7월 26일 환율 기준) 내에서 자신이 원하는 선수(15명)를 뽑아 팀을 구성한 뒤 그때그때 실제 경기 결과에 따라 점수를 부여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주간·월간·시즌별로 걸린 푸짐한 상품이 팬들의 구미를 돋운다.
시뮬레이션 게임은 전반적으로 현실의 무언가를 비슷하게 따라 하고 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춰 그만큼 정확도가 높다. FPL도 마찬가지 특성을 보인다. FPL에서 인기가 높고 영입 가격이 비싼 선수는 실제로도 승패를 좌우하는 키 플레이어로서 활약도가 무척 높다. 다시 말해 현실을 충실히 반영한 시뮬레이션 게임이 FPL이다. FPL의 흐름을 보면 그 시점에 누가 EPL의 핵심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치는지 가늠할 수 있다.
한국인의 기개를 한껏 떨치고 있는 손흥민(30·토트넘 홋스퍼)은 역시 무척 대단한 존재였다. 그가 당대 으뜸의 왼쪽 윙어임을 평가한 FPL 스카우트 보고서에서 나타난 객관적 사실이다. 26일(이하 현지 일자) 발표된 이 보고서는 프리미어리그 2022-2023시즌 개막(8월 5일)을 앞두고 반드시 영입해야 할 5명의 선수 가운데 하나로 손흥민을 손꼽았다. 손흥민의 효용 가치가 최고조에 달했음이 다시 한번 입증된 대목이다.
이 보고서가 뽑은 5명은 공격수 1명, 미드필더 2명, 수비수 2명으로 이뤄졌다. 공격수로는 2022-2023시즌을 앞두고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EPL 맨체스터 시티로 둥지를 옮긴 ‘괴물 센터포워드’ 엘링 브레우트 홀란이 낙점받았다. 손흥민과 함께 뽑힌 미드필더는 최고의 득점 감각을 뽐내는 모하메드 살라(리버풀)였다. 두 명의 수비수로는 좌우 풀백이 선택됐다. 오른쪽 풀백 트렌트 알렉산더-아널드(리버풀)와 왼쪽 풀백 벤 칠웰(첼시)였다.
2021-2022시즌 나란히 EPL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과 살라는 FPL에서도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각축을 펼치고 있다. 영입 가격과 2021-2022시즌 획득 점수에서 1, 2위에 자리하며 최고위를 다툰다. 손흥민이 영입 가격에선 1,200만 파운드(189억 원) 대 1,300만 파운드(205억 원)로, 포인트에선 258점 대 265점으로 미세하게 뒤진다.
손흥민은 지난 시즌 도중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토트넘 지휘봉을 잡은 이래 줄달음질 치며 포인트를 쓸어 담았다. 콘테 감독이 사령탑에 앉은 이래 획득한 201점은 FPL 그 어떤 선수보다도 많은 포인트였다. 따라서 콘테 체제 2기인 2022-2023시즌엔, 이른 시간 안에 살라의 벽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FPL은 주어진 예산 1억 파운드 범위 안에서 15명으로 이뤄진 팀을 구성해야 한다. 손흥민과 살라의 몸값은 이 예산의 10분의 1을 초과한다. 둘 중 한 명만 선택하더라도 전체 팀 구성이 자칫 곤혹스러워질 수 있다. 그런데도 이 보고서가 손흥민과 살라를 꼭 영입해야 하는 미드필더임을 강조한 점은 그만치 둘의 효용 가치가 절대적임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EPL 신출내기인 홀란은 묵직한 첫걸음을 과시했다. 단숨에 손흥민과 ‘영혼의 단짝’을 이루는 해리 케인을 비롯한 유수한 골잡이들을 뛰어넘고 단 한 자리 선택받은 공격수를 꿰찼다. 맨체스터 시티 데뷔 무대였던 프리 시즌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전에서, 터뜨린 결승골(1-0)도 한몫을 거든 듯하다.
홀란의 영입 가격은 1,150만 파운드(181억 원)에 이른다. 2020-2021시즌 득점왕과 어시스트왕을 석권한 케인과 똑같은 몸값이다. 또, 살라→ 손흥민·케빈 더 브라위너(맨체스터 시티)에 이어 4위다. 홀란에게 쏠리는 기대감이 엿보이는 높은 금액이다.
EPL 2022-2023시즌은 손흥민에게 뜻깊은 시기로 다가온다. 절정의 득점력을 뽐내는 손흥민이 득점왕 2연패의 열망을 이룰지 눈길을 끈다. 시즌 개막을 앞둔 중요한 시점에 나온 FPL 스카우트 보고서는 그 전망을 장밋빛으로 물들인다. 손흥민의 질주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