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인간을 인간다운 존재로 키워내는 지속적이고 가치로운 활동이다. 그러면 이러한 교육이 목표로 하는 ‘인간다운 존재’란 어떤 사람인가? 우리말에 ‘~답다’라는 말이 있다. 예컨대, ‘선생님답다’, ‘학생답다’, ‘부모답다’, ‘인간답다’ 등은 어떤 존재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다할 때 표현하는 말이다. 이는 쓰기는 쉽지만 그 말과 일치하는 삶을 살기란 쉬운 일 이 아니다.
인간다움을 갖춘 존재, 즉 ‘인간으로서 아름다운 향기를 머금은 존재’는 인간으로서의 멋과 가치를 지니고 그것을 마음껏 발산하는 존재이다. 그 진한 향기는 처음부터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배움과 자기수양의 노력이 병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갈등과 고통 속에서 얻게되는 인간다움의 향기는 그래서 주위 사람에게 깊은 존경과 감동을 주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인간다운 교육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첫째, 가정에서부터 올바른 자녀교육이 시작되어야 한다. 가정은 최초이자 중요한 인간교육의 장이다. 그런데 오늘날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대한 역할과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자신의 책임이 자녀에 대한 애정 표현을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도록 하는 것으로만 생각한다.
자식의 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규칙을 위반해도, 타인에게 피해가 되는 파렴치한 행위를 해도,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아도 관대하게 봐주거나 그냥 지나치려한다. 결국 자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교육받지 못하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이 발달하지 못하여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방임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또한 가정에서의 지나친 자녀 위주로의 생활양식도 문제이다. 자기 중심적인 인간을 키워 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가정의 문제는 부모의 자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지나쳐서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약이 과하면 독으로 변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육적인 측면에서 볼 때 과잉보호는 무관심보다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자신이 교육받은 그대로 유사한 인간이 된다. 헌신적이고 애타적인 사랑을 받으면 애타적인 인간이 되고, 과잉의 방임적인 교육을 받으면 그런 유형의 인간이 된다. 그러므로 페스탈로치는 가정교육의 중요성과 관련하여 “가정은 도덕상의 학교이며, 어머니는 하늘이 내리신 교사이다”라고 불렀던 것이다.
둘째, 인간다운 교육은 형식적인 교육의 핵심기관인 학교에서도 실천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본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도덕 룰이 무너지고 있는 사례가 학교에까지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덕성의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할뿐만 아니라 다른 곳이 흔들려도 굳건하게 제 제자리를 지켜야 할 학교가 그 역할을 스스로 파기한 현실을 보면 안타깝지가 그지없다. 책임과 진실이 살아 숨쉬어야 할 곳이 학교이며, 신뢰와 존경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선생님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셋째, 가정교육과 학교에서 배운 가치가 실제로 통용될 수 있는 도덕적인 사회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가정과 학교에서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져 도덕성을 갖춘 청소년들을 사회로 내 보냈다고 해도, 만일 사회가 이들이 배운 가치, 규범, 삶의 태도를 실천하기에 부 적절하다면, 즉 그들이 배운 가치가 무시당하고 그 반대적 가치가 버젓이 통용된다면, 청소년들은 생존하기 위해 부정의와 비리가 판치는 사회적 관행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더 나아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그 구조 속에서 성공하고자 할 것이며, 그러자면 철저히 사회적 관행의 악순환을 이용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사회의 도덕성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건전한 개인의 의식까지도 파괴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배운 참된 가치가 실제로 작동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나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은 중요하고도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