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실천(實踐)이 만들어 내는 기적

 

까까머리에 교복을 입던 오래전의 이야기다. 반 배정이 끝난 뒤, 잔뜩 긴장한 탓에 중학생이 되었다는 막연한 기대나 설렘보다는 두려움과 어색함이 주위를 감쌌고 몇몇 친구들은 호기심이 가득한 웃음과 나름의 재잘거림으로 무거워진 교실 안팎의 공기를 흐트려놓고 있었다.

 

조회가 끝나고 첫 시간, 선생님은 영어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시면서 칠판에 ‘하루에 한 단어’라고 쓰셨다. 하루에 한 단어를 암기하라는 것이고 그 전제는 꾸준한 ‘실천’에 있다고 몇 번을 강조하셨다. 그렇게 일 년이면 365개, 십 년이면 3,650개를 암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기에 이를 ‘실천’으로 옮길 수만 있다면 공부뿐만 아니라 평생 영어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당부의 말씀이셨다.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본인 삶의 성찰이었을 것이다. 이는 세상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이며 앞으로도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실천(實踐)’이란 말은 참된 실(實), 실행할 천(踐). 참으로 실행한다는 말이다. 즉 ‘생각한 바를 실제로 행한다.’라는 뜻이 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을 하고 있더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허상만으로 세상을 가름할 때가 있다. ‘실천’ 없는 머릿속 생각만으로는 현실을 바꿀 수 없음에도 스스로가 직면한 현실과 종종 타협해 버린다. 그리고 곧바로 후회를 하게 된다. 현실 타개는 ‘실천’에 있다. ‘실천’만이 답인 것이다.

 

그리스·로마 신화나 우화를 살펴보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름의 결단과 ‘실천’을 통해서 소기의 목적한 바를 이뤄내는 긍정적 사례들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그중 서양 문학의 불후(不朽) 고전으로 알려진 호메로스(Homeros)의 『오디세이아』가 그 예일 것이다. 트로이 목마를 이용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Odysseus)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10년간의 고된 여정에서 신들의 수많은 직·간접적인 개입과 방해를 받는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좌절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최선으로 그가 꿈에 그리던 가족과 왕국을 되찾았다는 이야기다. 또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토끼와 거북』의 이야기도 꾸준함의 중요성을 교훈으로 남기는 우화일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실천’이라는 개념이 어떤 강요나 수동적 성격이 아닌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노력과 의지, 자기표현의 철학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21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후보자들은 이런저런 공약들을 내놓고 있다. 어떤 후보는 ‘인공지능(AI) 강국, K-콘텐츠와 미래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 등 지방 균형발전’을 핵심 목표로 삼았고, 다른 후보는 ‘기업 투자를 유도하는 세제 개혁을 포함해 전국 5개 광역권 GTX 구축과 정치개혁을 위한 특권 폐지 등을 약속하고 있다.

 

또 다른 후보들도 ‘효율적인 정부, 청년 도전에 지원, 연금구조 개혁, 불평등이 없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주장하면서 10대 공약과 함께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나열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 실천율은 약 50% 내·외의 수준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대통령과 각 정당 간의 역학관계, 집권 시기의 정치 환경에 따라 성과는 달라질 수 있다지만 그 수치는 너무 초라해 보인다.

 

특히 올해로 광주 5·18민주화운동이 45주년을 맞이하면서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던 영령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민주·인권·평화 정신의 가치를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에 명시하고자 하는 여러 노력이 1987년 이후부터 계속되어왔다. 이 땅에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던, 그날의 아픔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외침이었지만, 헌법 명시는 번번이 좌절되었다. 다행히도 이번 대선에 참여한 후보 7명 중 4명은, 5·18 정신을 계승하고 헌법 전문에 반영해야 한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이나 말뿐인 약속은 아무 의미가 없다.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고 신들도 말뿐인 인간들을 비웃을 것이다. 고대 신화에서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실천’의 중요성은 변함없이 강조되어 왔다. 특히 투표와 같은 시민의 권리는 ‘실천’을 통해서만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선거는 권리이자 또 의무이기도 하다. 투표는 단순한 개인적인 행위라기보다는 한 나라의 존립을 결정짓는 고귀한 ‘실천’이다. 투표라는 행위는 영어 단어를 매일 암기하는 노고에 비하면 훨씬 쉬운 ‘실천’ 중 하나일 것이다.

 

2025년 6월 3일, 대한민국 21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투표는 시민 각자의 권리와 의무를 적극적으로 행사함으로써 개인과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 단순히 희망만 품는다고 당면한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그 희망은 책임 있는 행동이 동반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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