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빵 문화는 빵이 도입된 구한말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가 겪은 사회적·문화적·경제적·정치적 변화에 상응하여 빠르게 변화되어왔다. 한국 빵 문화 변화는 일제 강점기의 아이콘인 단팥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단팥빵은 일본을 통해 접하게 된 일본화된 서구 근대문화를 그대로 나타내 주는 빵이었다. 지금까지도 남녀노소 구분 없이 호불호가 강하지 않고 두루 사랑받고 있는 단팥빵이 우리나라 빵 문화의 첫걸음이다.
이후 6.25 한국전쟁 전후와 근대화 시기를 표상하는 아이콘은 옥수수빵과 슬라이스 식빵이다. 전쟁 후 가난과 배고픔을 달래주었던, 옥수수빵은 어린아이들에게 무상 급식 빵으로 생명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추억의 빵으로 회자 되고 있지만, 그 시절에는 그 빵마저 먹지 못해 굶는 아이들이 있을 만큼 대한민국은 가난했다.
이어 근대화 정책의 하나로 추진된 식생활 개선 운동에서 아침 식사로 빵을 권장할 때 모델이 되었던 미국식 아침 식사! 토스트 빵(흰 식빵, 슬라이스 식빵)은 그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TV 드라마와 영화 속 아침 식사 장면에서 가히 잘 사는 집 예쁜 사모님들은 약속이나 한 듯 진한 커피와 몇 조각의 과일, 토스트가 아침 식사로 표현되었다. 슬라이스 식빵은 단순한 빵이 아니었고, 시대의 상징이자 엘리트 문화의 표상이기도 했다.
이어 한국전쟁 전·후와 근대화 시기를 함께 묶은 것은, 우리 식생활의 급격한 변화가 시작된다. 공장형 빵들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유행처럼 빵을 대량 생산하여 출시하였다. 주요 소비층은 학생 등 젊은 층이었다. 주로 학교 매점에서 학생들의 간식으로 사 먹거나, 군대 사병들의 최애 간식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농민들에게는 내수 농업 바탕이 되었던 기존 농업체계가 이 시기를 통해 흔들리기 시작하게 된다.
미국의 세계농업체계 구축의 전략에 의해 한국의 농업의 구조적 변환을 겪게 된다. 여기서 핵심적 역할을 한 곡물이 바로 밀과 옥수수였다. 수입 자율화가 되면서 수입 밀과 옥수수가 밀려 들어왔고, 기업적 제빵 시기가 도래하게 된다. 이때 대기업의 아이콘이 된 빵은 부드럽고 달달 한 크림빵이었다. 당시 S사에서 만들어 낸 크림빵은 전국을 강타했다. 지금도 그때를 추억하는 중장년층은 빵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크림빵이라 말할 정도이다.
그 이후 대기업 프랜차이즈 제빵 시기의 아이콘으로는 바게뜨가 새롭게 등장한다. 이 시기에 제빵업자들은 빵을 고급화, 다양화하고 공장형 빵과 차별화되는 매장형 오븐 베이커리로 신선한 빵을 제공하려는데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빵의 본고장인 서구에 닮아 가는 방법으로 빵을 고급화하고, 각자만의 선호도로 차별화를 요구하는 소비자의 입맛에 부응하고자 노력했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선도하고 업계 1위의 프랜차이즈 기업이 된 P가 대표적이다. P사는 그 명칭 속에 소비자의 욕구를 그대로 담고 있는데, 바게뜨를 내세운 것은 고급 빵 하면 프랑스 빵이고, 신선한 오븐 베이커리의 프랑스 빵을 대표하는 빵은 바게뜨라는 인식을 담아내어 소비자에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곧 마케팅 성공사례라 할 수 있다.
현재는 도시마다 수제 장인 동네 빵 파티시에(pâtissier,pâtissière)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빵 드 깜빠뉴가 떠올랐다. 현시대를 대표하는 건강·환경·진정성·지역공동체 담론에 편승해 상업적으로 내세운 프랑스·이태리·독일 등 유럽의 건강 식사 빵을 대표하는 빵이 빵 드 깜빠뉴라고 한다. 빵 드 깜빠뉴는 ‘시골 빵’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 농민의 전통 빵이다. 줄여서 깜빠뉴라고 부르는데 이는 현재를 담아내고 있다.
일제 시기부터 최근까지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국의 빵 문화는 급격한 변화를 겪어 왔다. 이런 변화는 한국 현대사의 정치·경제·사회적 변화의 흐름 속에서 국민의 함께 삶과 문화 수준을 엿볼 수 있다. 한국의 빵 문화는 내적인 사회문화적 과정에 의해서만 형성되어 변화해 온 것은 아니라, 한국 빵 문화의 고향인 유럽과 특히 미국에서 일어난 빵 문화를 변화시킨 사회문화적 변화들이 시간을 두고 한국에 반영되었다.
또한, 서구에서의 소비패턴의 변화를 감지한 감각적 사업자들이 상업적 전략으로 빠른 한국식 변화를 주도하기도 했다. 여기에 해외 생활을 한 사람들, 유학생들이 가져오는 문화적 경험들이 변화를 더욱 자극하기도 하였다.
빵은 단순한 먹거리에서 끝나지 않고 정치·경제·사회적 변화를 담아내는 도구가 되고, 시대와 문화를 반영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현대인들의 빵은 단순히 간식거리에서 벗어나 한 끼의 식사, 건강을 생각하는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지방마다 지역특산물을 이용하여 특화된 빵을 만들어 지역 내 우수한 특산물의 브랜드화를 시키고 있다. 그 지역의 특화 산업과 지역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을 통하여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으며, 주민의 소득 증대를 높이는 기회를 제공하기까지 한다.
구례군도 역시 우리밀의 주산지로 우리밀로 건강한 빵을 만들고자 하는 제빵사들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다. 이에 구례군 도시재생지원센터를 중심으로 2년 전부터 구례밀로 건강한 빵, 사람에게 이롭게 하는 빵을 만들어보자는 취지 아래‘구례밀로 빵을 만드는 사람들’(약칭. 구빵사)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구례만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구빵사 회원은 모두 구례밀을 사용하고, 구례농산물을 이용하여 2024년에 각 매장당 한 가지씩 특화 빵을 만들어냈다. 토질이 좋은 땅에서 직접 농사지은 하지감자를 이용해 만든 ‘카페시옷의 하지감자 빵’은 담백하고, 부드러운 식감으로, 자연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빵이다.
평소에는 고추·오이 농사를 짓고, 구례 전통시장 3·8 장날이면 빵집까지 운영하는‘구례당의 구례밀우유식빵’은 빵집의 기본인 식빵에 충실해야 한다는 부부 사장님의 철학이 담긴 구례밀 식빵은 장이 열리는 오전에 가지 않으면 만날 수조차 없는 빵이다.
젊은 30대 부부가 직접 키운 블루베리로 만든‘이지원카페로의 구례블루베리크럼블’은 남녀노소가 모두 좋아하는 블루베리를 사용하여 맛과 모양 모두 세련되게 만들어냈다.
울산에서 귀촌하여 구례 특산물 산수유와 구례밀로 만든 추억의‘카페스윔의 산수유모찌빵’은 산수유의 떫고 신맛을 제거하고, 구례밀 특유의 쫀득함을 살려 현지인은 물론 관광객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본인의 좋은 땅에 직접 키운 안심 단감과 구례밀로 발효 빵 장인인 5일 시장 내 ‘감잡은여자의빵앗간의 슬기로운감빵’은 빵앗간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구례 감 빵이다.
임금님 진상품으로 올렸다는 구례 밤을 사용하여 만든‘구례역제과점의 구례밤파이’는 구례 지리산에서 자란 토실토실한 밤을 선별하여 기계가 아닌 사람 손으로 직접 율피를 제거해서 사용한다. 그만큼 정성이 가득한 빵이다.
구빵사 특화 빵! 즉, 구례밀로 만드는 사람들의 대표 빵으로 2024년에 만들어져 시판되고 있다. 구빵사는 지역공동체로 활동하고 있어, 전남과 구례의 굵직한 행사와 축제에 초대되고 있으며, 각종 유튜버들 사이에서도 빵지순례먹빵 촬영으로 인지도가 높아져 가고 있다. 구빵사는 서서히 구례의 브랜드로 정착되고 있다.
21세기는 정보화·세계화로 인해 국가 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1996년 국가 브랜드(National Brand)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사이먼 안홀트가‘지역브랜드가 빠진 국가경쟁력은 알맹이가 없는 것과도 같다’라고 지적했다. 사회적·문화적 변화에 따라 소비자들은 건강을 지향하는 기호로 변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소비자의 욕구와 기호도에 맞는 새로운 지역 상품의 개발은 계속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