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쇼핑 애플리케이션의 공습을 막기 위한 정부 대책이 오락가락한다. 정부는 ‘KC 미인증 해외 직구’를 금지키로 한 방침을 사실상 철회했다. 지난 16일 어린이 생활용품 80개 품목에 KC 인증이 없으면 해외 직구를 금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가 비판이 커지자 19일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만 차단하겠다’라고 한발 물러섰다. 섣부른 발표로 소비자들 사이에서 ‘선택권 제한’,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이 들불처럼 번졌다. 화들짝 놀란 정부는 하루만에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만 반입을 차단할 계획이라고 번복하더니 어제는 아예 KC 인증 조치를 사실상 철회했다. 졸속·부실 대책이 정부 신뢰에 상처를 낸 채 국민 불편과 혼란만 키운 꼴이다.
정부는 “안전성 조사 결과에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만 반입을 제한해 나갈 계획”이라고 수정했다. 앞서 사흘 전인 16일 장난감과 전기·생활용품 등 80개 품목에 대해 안전 인증이 없으면 해당 제품의 해외 직구를 원천 금지한다는 발표 내용을 스스로 거둬들인 것이다. 이미 해외 직구가 생활화된 국민의 반발을 처음부터 고려하지 못한 정부의 어설픈 방침이 문제를 일으켰다. 이미 중국의 플랫폼 알리·테무 등에서 판매한 초저가 상품으로 적잖은 국내 중소업체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정부 조치의 의도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안전 및 국내 업체 보호에만 치중한 나머지 소비자 선택권을 도외시한 점이다.
해외 직구 제품은 정식 수입품보다 평균 23.3% 저렴하다. 고물가 시대에 어찌 보면 최적화된 구매 행태다. 대통령실이 최근 “민생물가 기획단을 통해 물가 안정에 만전을 기울일 것”이라 한 마당에 일부 품목 해외 직구 금지 방침은 이율배반적으로 와닿을 수밖에 없다. 야당에서 ‘퇴행적 통상수교 거부정책’이라는 격한 표현이 등장하고 여당에서조차 “유해성 입증과 KC 인증 획득은 다를 수 있는데 이런 포괄적·일방적 규제는 무식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잖아도 윤석열 정부의 정책 신뢰성이 그렇게 높지 않은 판에 자꾸만 이런 일이 벌어진다. 대책을 발표하기에 앞서 정부가 좀 더 여론과 소통하고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오락가락 행정은 처음이 아니다. 이런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 더 큰 문제다. 2022년 7월 교육부는 초등생의 입학 나이를 만 5세로 하향하는 정책을 불쑥 내놨다가 국민의 극심한 반대로 사실상 2주 만에 폐기 순서를 밟았다. 지난해 8월엔 정부가 흉악범죄 대책을 세운다며 단계적으로 폐지했던 의경 제도의 재도입을 밝혔다가 하루 만에 ‘필요할 때 검토’로 태도를 바꾸기도 했다.
이번 정부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정책 근간도 곧잘 바뀌었다.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5개월 전 윤 대통령이 지시한 ‘킬러 문항’ 배제 지침은 수험생들을 혼란에 빠트려 사교육비를 증가시켰고, ‘준 킬러’ 논쟁으로 이어지다 역대급 불 수능으로 끝났다. 의대 정원 확대 문제도 공감하는 여론이 높지만, 부실한 정책 추진으로 의·정 대치 출구를 못 찾고 있다. 모두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었음에도 면밀한 여론 수렴이나 검토 없이 발표했다가 국민에게 호된 질책만 받았다.
정부 정책은 그 목표가 시급하고 합리적 타당성을 갖췄더라도 실효적인 세부 대책과 민주적 합의로 이뤄져야 한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첨예한 정책일수록 더욱 그렇다. 윤 대통령은 우왕좌왕하는 졸속행정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고, 확실한 재발방지책을 세워야 한다. 이번 중국에 대한 정책 취지로만 본다면 반발이 일어날 구석이 없다. 오히려 국민의 환영을 받을 만도 한데 현실은 정반대로 흘렀다. 이는 국민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탓이 크다. 안전한 상품의 확보와 피해 구제책 등 대안 없이 무턱대고 직구부터 금지하니 특히 젊은 층의 반발이 거셌다. 다양한 문화·상품을 즐기는 일은 벌써 국민의 일상이 됐는데 정부만 이에 어두웠다. 국민의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설익은 정책’은 이처럼 국민의 반발뿐 아니라 정부 정책의 신뢰성에도 심각한 마이너스 요인이다.
물론 중국산 직구 상품의 위해성은 심각한 문제다. 최근 조사 결과 어린이 제품 71개 중 29개(41%)에서 유해물질이 발견됐는데 어린이 성장을 방해하는 물질과 ‘가습기 살균제’ 성분까지 검출됐다. 인천세관 조사에서도 귀걸이, 반지 등 장신구제품 404개 중 96개에서 기준치의 700배에 이르는 독성물질(카드뮴과 납)이 나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소비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지키겠다”라고 했는데 이런 문제 인식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법적으로 가당치 않은 KC 인증 규제를 가하는 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모호한 적용 범위와 방식으로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주지 않으면서 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싸구려’ 유해 제품으로부터 국민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건 정부 책무다. 하지만 중국산 직구 물량이 연간 1억 건을 웃도는데 유해 물품을 걸러내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정부는 안전성 검사 때 대상 품목을 최대한 늘리고 유해 여부도 신속하게 가릴 수 있는 정교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중국 당국과 접촉해 직구로 건강상 피해를 본 소비자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방안도 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