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오동나무를 들여다보면 잎이 크며 오동나무와 잎이 매우 흡사하고 줄기 빛깔이 푸르기 때문에 푸를 벽(碧)을 앞에 붙여 벽오동(碧梧桐)이라고 한다. 짙은 청록이다. 북한에서는 청오동(靑梧桐)이라고 한다. 그런데 식물학적으로는 오동(梧桐)은 능소화과(현삼과)에 속하는 반면에 벽오동은 아욱과에 속하여 전혀 다른 식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오동과 벽오동을 모두 오동나무라도 부르듯이 옛 문헌에서도 그랬던 같다. 그 생김새가 워낙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글에서 벽오동 나무를 오(梧)라 하고, 오동나무를 동(桐)이라고 했는데, 내 생각으로는 옛날엔 벽오동나무를 오나무로 부르고 오동나무를 동나무로 부르다가, 비슷하게 생긴 두 나무를 아울러 그냥 오동나무로 부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오동나무와 관련해서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가 2 가지 있다. 하나는 오동나무에 봉황이 깃든다는 것인데 벽오동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딸을 나면 오동나무를 심으라고 했는데, 이는 오동나무를 말한다. 오동이 빨리 자랄 뿐만 아니라 그 목재가 가구나 악기의 재료로 좋아서, 딸 시집갈 때 장롱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이다.
생각해 보면, 벽오동나무에 관한 설화와 이야기들이 참 많다. 벽오동은 중국·한국·일본에서 선비정신의 상징으로 서당이나 정자 근처에 즐겨 심었다. 강한 녹색의 줄기로 곧게 15m 정도 크기로 자라는데 넓은 잎과 어울려 선비의 기개를 표상하는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성장이 빠르며, 맛은 쓰고, 성질은 차다. 약리실험에서 알코올 추출액이 근육의 긴장도를 높이고 심장의 수축작용을 세게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꽃과 열매는 부스럼, 치질, 출혈, 고혈압 등에, 씨는 소화 장애, 어린이구내염에, 뿌리는 뼈마디 아픈 데에 좋다고 한다. 벽오동나무의 열매는 오동자(梧桐子)라는 생약명으로 불린다. 껍질은 오동백피(梧桐白皮)라고 해서, 생리가 고르지 않을 때, 타박상 등에 쓰인다고 한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상서롭게 여기는 봉황새가 벽오동나무에만 집을 짓는다 하여 벽오동나무를 신성하게 여겼으며, 봉황은 대나무열매(竹實)만 먹는다고 하였다. 봉황이 깃들어 청아한 소리로 울면 온 세상이 태평해 진다고 하여 선조들은 대나무와 벽오동나무를 즐겨 심었다고 한다.
동지여지승람에 이런 내용이 있다고 한다. 옛 가야 땅인 함안읍에 오동나무숲, 대나무숲, 버드나무숲을 만들었는데, 풍수지리설로 보면 함안은 봉황이 머물지 못하고 날아가버리는 땅이므로, 봉황을 머물게 하기 위하여 흙으로 봉황의 알을 만들고, 벽오동나무 1천 그루를 심고, 또 대나무 숲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나라 안에는 봉황이 머물 수 있도록 벽오동 숲을 조성하는 고을이 많았다고 한다. 어쩌면 그 중 한 곳이 우리고장의 죽곡면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죽곡면에 있는 태안사는 신라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동리산파(桐裏山派)의 종찰로 꽤 오랫 동안 선암사, 송광사, 화엄사, 쌍계사 등을 거느렸던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이 절터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봉황이 둥지로 돌아오는 형국(鳳凰歸巢形)이라고 한다. 그래서 동리산이라고 했을까? 지금도 절의 현판에는 동리산 태안사라고 씌여 있다. 그런데 지금은 절 뒷산을 봉두산(鳳頭山)이라고 불러 봉황과 오동나무의 관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예전에는 죽곡면을 비롯한 태안사 주변 곳곳에 실제로 벽오동나무와 대나무 숲이 많았다고 한다. 대나무골이라는 뜻의 죽곡면에 봉정과 유봉이라는 마을이 있고, 죽곡면의 이웃이 오곡면으로 그 중심이 오지리이다. 또 다른 편 이웃인 목사동면의 죽정리와 석곡면의 죽산리, 봉두산 남쪽의 순천시 죽내리 등 봉황과 오동과 대를 안고 있는 지명이 많다.
그래서인지 죽곡면을 관통하는 대황강은 강변에 대나무숲이 많다. 전국의 강 중에 유일하지 않은가 싶다. 상상의 봉황으로 마을안녕과 인재가 나오길 기원하는 마음은 과거나 지금이나 같나보다.
서울신문(2011.8. 6.)에 “순천대 본관 앞 연못 풍수지리 진실은”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글이 실렸다. 이 연못은 2002년 9월 퇴임을 앞둔 허 전총장이 풍수지리적으로 그 자리에 꼭 연못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3개월에 걸쳐 조성했다고 한다. 순천대 바로 뒤에는 봉황을 상징하는 난봉산이 있는데 대학 터가 봉황새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며, 난봉산은 봉황이 날개짓을 하는 모양이라는 것이 풍수지리적인 해석이라고 한다. 아무튼 이후 장 전총장도 이 연못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며 업무 중 휴식을 하고자 하면 연못가에 물고기에게 밥을 던져주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생을 마감한 김 전총장과 임 전총장은 갑작스레 생을 마감한 김전총장과 임 총장은 이들과 달리 연못에 그리 각별한 애정을 보이지 않았다는 일종의 괴담이 퍼져 있다는 것이다. 순천대에서 10년 넘게 전통 풍수지리를 강의하고 있는 김계현(65) 교수는 연못을 돌보는 것이 역대 총장들의 앞날을 결정한다는 말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직설적 표현은 곤란하지만 봉황의 기운이 짙은 순천대는 연못을 만들 때 풍수지리의 도움을 받은 것이 확실하며, 예로부터 연못은 하천치수와 더불어 중요하게 여겨졌다고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또한 김 교수는 태안사는 봉황을 상징하는 봉두산 산록에 있어서 역시 봉황지형이므로 그만큼 연못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지면을 통해 읽어봄직하다.
어찌했든 풍수지리를 떠나 자연생태 환경의 관점에서 물의 중요성과 하천치수 관리의 차원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연못, 둠벙, 방죽의 복원이 시급한 상황인데, 앞서 말했듯이, 강다운 강,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으며 이 시대에 가장 높은 자연 생태적 가치를 지닌 대황강을 더 이상 개발의 논리로 훼손이 되지 않도록 막아야 하겠다. 보성강이 흐르다 주암댐에서 막혔다가 다시 흘러 압록에서 섬진강에 합류하기까지의 하류를 이 고장에서는 대황강(大荒江)이라고 부른다. 강물이 얼마나 거칠었기에 대황강이라고 했을까? 주암댐이 막히기 이전에는 여름이면 강물이 바윗돌 구르듯이 흘렀다고 한다. 생태적으로 참으로 그리운 모습이다. 이제 되돌릴 수는 없다. 지금의 대황강은 새로운 모습으로 생태적인 강의 모범을 보일 수 있는 모습과 조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이를 잘 잘살려야 한다.
이제 선조들의 지혜를 이어받아 죽곡면에 벽오동 가로수와 벽오동숲을 조성하고 지금 한참 마무리 짓고 있는 강빛마을의 안팎에도 벽오동나무를 심어 연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한층 더 자연경관이 아름답게 될 뿐만 아니라 공기비타민이라고 하는 음이온이 많이 발생할 것이다. 21세기는 탄산가스(이산화탄소, CO2)로 인한 기후변화가 전 지구적 과제가 되어 있다. 이를 해결하자면 무엇보다도 탄소(화석)연료를 비롯한 물자를 아끼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적극적으로 나무를 심는 일이다. 1헥타르의 숲이 생산하는 산소는 45명이 1년간 숨쉴 수 있는 양이다. 지구상에 자라나는 모든 녹색 식물의 잎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광합성으로 생명을 유지하면서 산소를 내놓는다. 침옆수보다 활엽수가 더 많은 양을 흡수한다. 활엽수의 잎 표면적이 넓고 생장활동도 더 활발하기 때문이다. 대나무와 벽오동나무는 탄산가스 흡수율이 아주 높고 특히 일반 숲보다 10배나 음이온이 많이 발생되고 산소 발생량도 높아서 우리 몸의 혈액을 맑게 해준다.
죽곡면의 지형과 유래, 아름다운 대황강, 벽오동과 대나무숲을 연계해서, 봉황과 오동과 죽실이 어우러진 스토리텔링의 관광과 휴식이 있는 죽곡면을 만들어 보자. 죽곡에서 오늘날 유행하는 힐링캠프를 열어 자연경관과 맑은 공기와 봉황이 상징하는 행운과 안녕을 찾도록 한다면, 지역농산물의 가치도 높아지고, 많은 소득이 창출되지 않을까? 곡성군의 죽곡면에 벽오동을 심어서 환경도 살리고 이야기도
만들고 소득도 높이는 생각을 가져본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잣더니 / 내가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 오고 / 밤중에만 일편명월(一片明月)이 빈 가지에 걸려있네“
푸른곡성21 대표 박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