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에 대한 발포 명령을 거부한 故 안병하 치안감의 활동과 경찰의 시각에서 5.18을 다시 재 조명한 “안병하 평전”이 출간 되었다, 5.18 그날 ! ‘안병하 치안감’ 은 전남도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전남도경찰국장’ 으로서 신군부의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을 적극 반대했고 시민을 향한 발포 명령을 거부하고 다친 시민을 치료하고 편의를 제공 했었다, 안 치안감은 그 일로 인해, 직위를 박탈 당하고 국군 보안사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아, 피폐해진 몸과 마음의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후유증에 시달리다 1988년 10월 사망에 이르게 된다, 故 안병하 치안감의 죽음으로 인한 남은 가족들의 억울함과 울분, 극한 생활고는 견딜 수 있었지만, 국민을 위해 광주시민을 위해, 조국을 위해 생을 마감한 아버지 이고 남편인 고인에 대한 관심은 보수 집권 내내 눈밖에 난 인물일 뿐, 혹여 다칠세라 가깝게 다가와 고인에 대한 살신성인의 정신을 들어 내 주려 하지 않았던 많은 아픈 세월들, 안병하 치안감님의 셋째 아드님이신 ‘안호재, 기념사업회장의 말에, 그때 현실의 삶이 더 아프고 힘들었다 는 소회이다,
그날 ! 광주는 기억한다, 그날 전남도청 앞에서 있었던 일들이 얼마나 끔찍 했었는지를...
하늘에선 전쟁영화에서나 볼수있었을 군용 헬기가 위협사격을 가했고 땅에서는 적과 대치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 해 주어야 할 대한민국 국군에 의한 무고한 시민의 살육이 대명천지 광주에서 악날하게 전개 되고 있었다, 이를 지켜본 선량한 광주시민들이 불의한 군사반란세력들에 맞서 싸웠던 게 바로 “광주518민주화운동"이고 민중봉기 이다,
그런 순수한 국민의 저항에 대해, 총을 발사 했던 군인이 있었고 당시 전일빌딩에 헬기 기총소사를 목격 했다는, 미국CIA한국특파원의 생생한 증언이 이미 언론에 보도 되었는데도, ”헬기사격이 없었다“ 총을 쏘긴 쐈는데 자위권 차원에서 했다, ”명령한자가 없다“ 하는 괴변의 인면수심, 구제 받지 못한 노쇠한 빗나간 군인의 반성 없는 삶, 결코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목숨이 아니기에 올해로 5.18민주화운동 40 주년을 맞는 지금, 당시의 상황을 재조명 하는 故 안병하 치안감 ”기록의 평전“이 주는 의미가 그 어느때 보다도 남다르다 할 것이다, [전남투데이 임채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