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과 장미 그리고 양대진
소름돋는 영화 ‘곡성(哭聲)’

살인, 방화, 자살 등 무려 2시간 30분 동안 영화 보는 내내 소름돋고, 영화가 끝나는 순간 소름돋고, 다시 이해니까 소름돋는.. 반전에 반전이 거듭한다.
반전이 생명인 스릴러 영화이기에 영화의 내용을 애써 알아 보지않고 극장에 들어갔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거슬린 것은 눈에도 익숙한 곡성의 시가지 였다. 그 거리에서, 마을에서 살인사건이 줄을 잇는다.
곡성의 전 시가지가 온통 영화의 셋트장이다. 눈에 익숙한 섬진강 둥둥바위, 곡성경찰서, 읍 파출소, 병원 건물과 식당, 상호들이 여과없이 그대로 나타나고 지나간다. 대형 스크린에 곡성의 시가지 전경이 나타나고 유명 배우들이 열연하는 영화를 보면서 무엇보다 반갑고 신기하며 실제적인 환상에 젖어들기도 했다. 이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처럼 무엇인가 야릇하고 짜릿하여 소름돋는 또하나의 체험거리이었다. 실제로 ‘어렸을 때 곡성에서 산 적이 있다’는 나홍진 감독이 어린시절의 추억이 깃든 곡성땅에서 촬영한 것이기에 묘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 영화의 개봉과 맞추어 나온 ‘곡성(哭聲)과 다른 곡성(谷城) 이야기’라는 제목의 유근기 곡성군수의 전남일보 기고문 또한 화재였다.
곡성(哭聲) 영화의 흥행은 상영이후 펼쳐진 ‘곡성세계장미축제’로 이어졌다. 일일 평균 2만명이 넘게 찾아온 장미축제에는 개막 후 다녀간 관람객이 총 23만명이라고 하니 최대의 흥행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관계자들에 의하면 곡성(哭聲) 영화의 흥행도 곡성의 장미축제를 알리는데 큰 역활을 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섬진강기차마을 내에 자리한 1004 장미공원은 점차 해를 거듭할수록 형형색색의 꽃물결을 이뤄 그 장미향과 자태가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황홀해 지고 있다. 전국에 수많은 장미공원이 조성되거나 조성되고 있는 중이다. 꽃이 있는 곳에 벌 나비가 찾아든다. 곡성군민들이 7~8년간 6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피땀흘려 애써 가꾼 1004종의 장미공원. 그 장미공원이 이제 흘림 땀의 열매를 수확하고 있는 중이다. 곡성의 장미꽃 정원은 호남지역을 찾아온 전국 관광객들의 필수 관람코스로 등장한 것 같다. 필자와 연관된 대한적십자사 천안지회에서도 일천이백명의 관광객이 일시에 다녀갔으며, 전국의 수많은 단체관광객들이 축제가 끝난 뒤에도 장미공원을 찾아오고 있다.
곡성장미공원은 가히 전국적인 장미꽃 정원으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영화 ‘곡성(哭聲)’을 곡성군(谷城郡)과 연결지어 역발상을 갖도록 홍보하고, 1004장미공원과 장미축제를 전국에 알려는데 혼혈을 기울린 공무원이 한사람 있었으니 곡성군청 홍보팀에 근무하는 양대진 주무관이다.
양대진(39) 주무관은 고려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해 있다가 그만두고 늦깍기로 공무원시험에 합격, 경기도 여주시청을 거쳐 처가가 있는 곡성군청으로 전입해 왔다. 양 주무관은 보도자료를 취합하고 정리하여 각 언론매체로 발송한 후, 저녁 9시 곡성에서 광주로 가는 막차를 타고 가정의 품으로 돌아간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이다. 양 주무관은 필자와는 언론관계로 접촉이 잦은 공무원 중 한사람이다. 비록 말수는 적지만 행동거지가 바르고 듬직하며, 기사작성 등 그 실력이 출중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다.
양 주무관이 갑자기 비명에 갔다. 버스 마중 나온 8개월된 만삭의 부인과 6세된 아들과 함께 아파트로 들어가는 순간, 그 아파트 20층에서 유서를 남기고 뛰어내린 공무원 준비생과 맞붙이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남편인 젊은 공무원의 황망한 죽음. 도저히 일어나기 힘든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곡성(哭聲)의 영화 개봉에 맞춰 곡성(谷城)을 홍보하고 장미축제를 알리는데 전력한 곡성군청 공무원 故 양대진 주무관.
공무원 준비생의 자살도 모두 슬프고 힘든 우리 사회의 자화상인듯 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기를 빈다.
섬진강변 습지
박정하 / 곡성신문 대표
삼성삼평(三城 三平)이란 말이 있다.
삼성(三城)은 장성(長成)·곡성(谷城)·보성(寶城)을 말하며, 삼평(三平)이란 창평(昌平)·남평(南平)·함평(咸平)을 일컫는다.
전라도 지역에서 흔히 살기 힘들고 인심이 사나운 지역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비합리적인 용어라고 알려져 있다. ‘삼성삼평 사람은 앉은 자리에 풀도 나지 않는다’는 등 근거없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나타난 데에는 몇가지 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조선조말 민비시해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이에 대한 울분을 터트렸고 또한 일본에 대해 항거하는 항일투쟁을 많이 일으켰기에 전라도의 삼성삼평이 대표적인 골치아픈 반항고을로 인상지운 것 같다는 설이다.
또하나는 일제 침탈기에 장사판을 앞세워 상권을 형성했던 일본 상인들이 삼성삼평에서는 유독 발붙이지 못하고 망해서 나간 탓에 붙여진 이름이다는 설이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사료가 전해오고 있다. 즉, 조선조 영조때 암행어사로 이름을 크게 떨쳤던 박문수 어사가 팔도강산을 순회하고 조정에 돌아와 복명할 때 “산수가 좋기로는 一長成 二長興이요, 가히 사람 살만한 곳은 三城 三平인데, 三城은 長成·谷城·寶城인 바, 산이 좋고 물이 맑으며, 삼평은 창평·남평·함평인데 들좋고 물 좋으니 농작물이 풍부하여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고을이다”며 보고하고 있다.
곡성은 이처럼 역사적으로 일제의 수탈에 반항하면서 얻어진 의향으로서 강인함과 산자수명한 자연을 지닌 살기좋은 고을로서 이미지와 상징성을 지녀온 것 같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우리는 조상들이 가꾸어 온 곡성의 이미지 그리고 살만한 고장으로서 곡성의 자연을 잘 지키고, 또한 가꾸고 있는지 한번쯤 뒤돌아 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곡성군에 정주하고 있는 주민들은 대부분 군 면적의 70%이상을 점하고 있는 산자락에서 섬진강과 대황강으로 흘러드는 물줄기를 따라 생활을 영위해 왔다. 이처럼 우리군민은 여타 시군에 비해 자연환경의 풍요로움 속에 살면서도 자연생태학적으로 우리와 함께 해야할 강변 습지(濕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그다지 눈여겨 보지 않았던 것 같다.
곡성지역을 흘러가는 섬진강 유역에는 입면 종방지역(송전습지), 입면 제월리 지역(석촌습지), 곡성읍 장선리 지역(금지습지, 장선습지), 고달면 고달리 지역(침실습지)에 습지가 잘 발달해 있으며, 대황강 쪽에서도 목사동면 신전리 지역(신전습지), 석곡면 유정리 지역(반구정습지) 등 크고작은 습지가 나름대로 발달되어 있다.
이 지역은 일교차가 큰 새벽이면 물안개가 습지에 형성된 왕버들나무 사이로 어울어지면서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가이 환상적이다. 특히 중간에서 뭉게구름처럼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더욱 아름답고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해 낸다.
특히, 이들 습지 중 ‘섬진강 침실습지’는 지난해 자연생태환경 정밀조사를 실시한 결과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인 수달, 흰꼬리수리와 II급인 삵, 남생이, 새매, 큰 말똥가리, 새호리기 등이 발견되었다고 전한다. 또한 이 지역은 하천습지로 야생생물의 다양한 서식환경을 지니고 있어 양서류, 곤충류 등 총 638종의 다양한 생물이 분포 서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곡성 섬진강 침실습지’는 섬진강 중류지역인 고달면 고달교에서 오곡면 오지1교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 그 면적은 2,286,740㎡에 달한다.
멸종위기 및 희귀야생 동·식물 고유종이 서식하는 ‘자연 생태계의 보고’이며 물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자연의 콩팥’이라 일컷는 습지는 그동안 쓸모없는 유휴지로 여기며 훼손해 왔으나 습지를 서식지로 이용하는 새들이 무려 170여종에 이르며 오랜 세월동안 많은 양의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양한 수의 수생식물이 자라고 홍수나 가뭄시에 피해를 막아주는 훌륭한 자연댐의 역할을 한다.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나라에서는 습지에서 서식하는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람사르협약을 맺고 습지생태계를 보호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여러 지자체에서도 1997년이후 환경부 지원하에 22개소를 람사르습지에 등록했으며 현재도 이를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접 지자체인 순천시의 경우 지난 6월 순천만 습지에 이어 동천하구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한데 이어 습지에 관한 국제 기구인 ‘람사르’ 습지로 공식 등록하게 됐다는 소식이다. 이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갯벌과 하구습지, 논습지 등 다양한 유형의 국제적 습지를 연계한 통합적 습지관리의 모범 체계를 구축, 람사르습지내 농수산물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는 계획이어서 부러움이 앞선다.
곡성군에서도 뒤늦게나마 곡성읍지역의 ‘섬진강 침실습지’에 대해 국가보호습지 지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곡성군 습지에 대한 체계적인 보존과 관리 방안이 보다 적극적으로 모색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졸속으로 여타 지자체의 뒤따르기식 뒷북행정, 한껀식 모방적 계획에 치우쳐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