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희고 순결한 그대 모습. 봄에 온 가인과 같고~” 드디어 겨울이 지나갔다.
매화가 첫 꽃망울을 터트리면서 노오란 산수유가 점점이 피고, 담장 너머 노랑 개나리꽃들이 아기 같은 손을 흔들며 웃는다. 곧 목련도 세상을 환히 밝히는 꽃등을 켜겠지. 봄이다, 봄! 발걸음이 왠지 가볍고 콧노래가 절로 난다.
알록달록한 색깔들에 묻어나는 향기는 지난겨울의 춥고 무거웠던 기억을 말끔히 씻어 내는 듯하다.
지난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춥고 힘들었다.
끝을 알 수 없던 기나긴 COVD-19와 수시로 들려오는 불안정한 경기지표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모두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 천재지변. 인간의 존엄마저 의심케 하는 수많은 질곡의 시간을 마주하면서 봄은 참으로 멀게만 느껴졌었다. 하지만 어김없이 봄은 다시 찾아왔고 우리는 희망의 기운을 느낀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인간은 위기 속에 새로운 희망을 그려냈고,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묵묵히 앞을 향해 걸었다.
역사의 선각자들은 시대정신에 부응하기 위한 끊임없는 질문에 답해왔다.
수많은 역경에도 봄의 희망을 담아왔던 것이다. 고전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도 시‧공간을 넘나들며 음악으로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던 선각자 중 한 사람이다.
베토벤은 1770년 12월 16일 독일 쾰른에 있는 본 시의 가난한 집 다락방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에는 주정뱅이 가수였던 아버지에게 가혹한 학대를 당했고, 17세 때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일가의 가장이 되었다.
세상은 그를 평범한 음악가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나아갔으며 내면의 자존감과 시대를 바라보는 측은지심으로 인류사에 길이 남을 음악가가 되었다.
공화주의적 원리를 사랑했던 청년 베토벤은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실천하기 위한 고뇌로 한때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 1769~1821)이라는 현실적 영웅을 기대한 적도 있었다.
베토벤의 청력이 점점 상실되어 가던 32살 어느 날, 약 2년여에 걸쳐서 3번 교향곡을 작곡해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 했지만,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베토벤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라고 적혀있던 표지를 찢어 없애기도 했다.
1789년 5월부터 1799년 11월까지 이어진 프랑스 대혁명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실천 운동에 불을 붙였고,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과 괴테(J. W. Goethe, 1749~1832)의 ‘에그먼트’를 비롯한 실러, 바이런, 하이네, 푸시킨, 위고 등 위대한 작가들의 수많은 시와 소설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이때 베토벤은 급변하는 사회변화를 목도하면서 이들의 작품을 품고 직, 간접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수많은 철학자의 고서를 탐독했던 베토벤은 결국 교향곡 9번 <합창>을 통해 인간 존엄과 보편타당한 사랑의 가치를 음악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합창>은 지구촌 모든 이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며 지금도 어느 공간에서 끊임없이 연주되고 있다.
이 곡은 실러(J. C. F. Schiller, 1759~1805)의 <환희에 부쳐>라는 시에 곡을 붙였다. “즐겁게, 하나님의 태양들이 하늘의 찬란한 계획을 따라 날아가듯 달려라, 형제들아, 그대들의 길을 승리를 향해 가는 영웅처럼, 기쁘게” 베토벤 나이 53세 때 작곡된 이 곡은 거의 11년 만에 완성됐으며 그의 삶의 총결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작곡된 교향곡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며 그의 신념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고전파 음악을 대표하는 주체적인 음악가이며, 또 새로운 음악을 설계하는 창의적 인물로 위대한 음악들을 인류의 유산으로 남겼다.
곡의 전개 방식에 변화를 주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화성·악기 배치 등 새로운 실험을 통해 고전주의 형식을 완성 시키면서 낭만주의 등 새로운 음악사조의 탄생에 이바지한 음악가로 평가받는다.
뜨거웠던 가슴을 가지고 있었던 청년 베토벤. 자신이 앓고 있던 귓병이 그를 잠식하기도 했지만 그의 불굴의 의지와 신념은 오늘날 인간승리의 상징이며 역사의 위대한 유산이다.
그가 세상과 이별을 고한 1827년 3월 26일은 어둡고 창밖에 진눈깨비 내리고 있었지만 오늘의 베토벤은 봄날의 꽃이 되어 활짝 웃는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세상과 작별한지 200여 년이 되어 가지만 그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할 것이며 그의 음악 또한 변함없이 연주될 것이다. 그는 모두의 친구이며 근대 예술의 영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