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투데이 윤진성 기자]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 간음죄, 강제추행죄 등 혐의에 1심 재판부가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대한민국 사법부에 걸었던 한낱 희망은 언제나처럼 휴지 조각이 됐다. 본인과 가족에게 어떤 고초가 있을지 알면서도 방송 출연까지 감수하며 호소했던 피해자는 구제받지 못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유력 정치인이고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며, 도지사로서 별정직 공무원인 피해자의 임면권을 가진 것을 보면 위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서도 “피고인이 적어도 어떤 위력을 행사했다거나 하는 정황은 없다”는 모순된 입장을 내놨다. 권력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특히 권세와 지위가 성범죄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알려 하지도 않겠다는 태도를 그대로 드러냈다.
피해자는 차기 대통령으로 공공연히 거론되는 막강한 영향력의 도지사에게 일상적으로 종속된 수행비서다. 불편하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무려 ‘헛기침이나 눈빛으로’ 지시하고 상황을 파악해 적절히 보좌하는 게 상시 업무였다. 이런 지위가 성관계 시에만 평등하게 바뀐다는 것이 가능한가. ‘권력형 성범죄’에서 권력은 곧 폭력이다. 위력이 개입된 성범죄 메커니즘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일말의 성인지 감수성도 없는 재판부의 이번 판결 자체가 가해이다.
피해자는 “무섭고 두렵다”고 했다. “또다시 지독히 괴로운 시간을 밟아야 할 것”이라 했다. 피해자는 언제 이 고통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피해자가 존재를 걸고 용기 내 증언한 것을 결국 후회하게 된다면 이는 우리 사회 모두의 실패이다. 피해자가 침묵했다면 어쩌면 ‘차기 대통령’이 됐을지도 모를 이의 끔찍한 성범죄를 공개 증언해 준 피해자에게 우리는 빚을 졌다. 그가 지치지 않도록 쓰러지지 않도록 우리가 끝까지 함께 지켜내야 한다.
2018년 8월 14일
녹 색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