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국 초·중·고교에서 발생한 학교폭력 심의 건수가 2만 건에 육박할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19 때문에 실시했던 원격수업이 다시 대면 수업으로 바뀌면서 한때 감소했던 학교폭력 심의 건수가 다시 늘어나는 추세이다. 특히 최근 들어 학교폭력 가운데 언어폭력 비중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신체폭력·집단따돌림·성폭력 외에 언어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계에서는 스토킹과 성폭력 등의 경우 최근 수년간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면서 정부와 학교 차원의 대응책이 나오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경각심이 생겼지만, 언어폭력에는 이런 잣대가 다소 느슨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최근 언론에서 보도 된 것처럼 일부 학부모들은 가해자이면서도 변호사를 선임, 재판까지 가며 반성하지 않는 학부모와 가해 학생이 있는 안타까운 현실의 진행형이 이어지고 있다. 상식이 있는 학부모라면 내 아이가 학교폭력의 가해자라면 상대피해 학생이 얼마나 다쳤는지부터 묻고, 가해 사실이 확인되면 아이와 함께 피해 학생과 부모를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하며 선처를 호소할 것이다.
법을 잘 아는 일부 학부모들은 가해자의 손해를 최소화하는 데만 집중한다. 우선 피해 학생 쪽에 연락하지 말라는 조언부터 한다. 섣불리 사과하거나 합의를 시도하면 불리한 증거가 될 수 있다.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리면 9단계 징계 조치 중 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남지 않는 ‘3호 학교 봉사 이하 처분이 나오도록 한다. 그 이상의 징계 처분이 나오면 재심을 청구하고, 그래도 안 되면 징계 처분 취소 소송으로 시간을 끈다. 그래야 특목고든 대학이든 입시 전형이 끝날 때까지 학교폭력 전과 기재를 미룰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지 하루 만에 물러난 정순신 변호사도 이 공식을 따랐다. 정 변호사 아들은 고1이던 2017년 5월부터 동급생을 언어폭력으로 괴롭히다 2018년 3월 학폭위 심의를 받게 됐다. 당시 현직 검사였던 아버지는 “학교의 선도 노력을 많이 막았고”, 진술서 작성을 지도했으며, 전학 처분이 나오자 재심 청구, 가처분신청, 징계 처분 취소 소송으로 1년 가까이 전학을 미뤘다. 결국, 아들은 수능 성적만으로 서울대에 합격했고, 피해 학생은 징계 처분이 지연되면서 몸도 학교생활도 만신창이가 됐다.
대구 중학생이 학교폭력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후 2012년 학폭 징계 기록을 생활기록부에 남기는 제도가 도입됐는데 이를 계기로 학폭 전과 세탁을 위한 소송 수요가 생겨났다. 증거가 남는 신체폭력에서 언어폭력이나 은근한 괴롭힘으로 학폭이 ‘진화’하면서 법 기술이 개입할 여지도 커졌다.
서울행정법원엔 학폭 사건 전담 재판부가 신설됐으며 학폭 전문 변호사들도 수십 명이 활동 중이다. 간혹 억울한 가해자도 있지만 많게는 1000만 원이 넘는 소송비를 감당할 수 있는 소수가 시간을 끌며 징계를 피하는 동안 피해자는 2차 가해까지 감수해야 하는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학교폭력이 소송전이 되는 순간 ‘선도’, ‘회복’, ‘화해’ 같은 교육적 가치에서 멀어진다. 정 변호사가 법 지식이 아닌 상식으로 대응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합당한 책임을 지게 했더라면 피해 학생은 일상을 회복하고, 아들은 훨씬 낳은 사람이 됐을 것이다. 법을 공부한 아버지의 그릇된 자식 사랑이 남의 아이와 제 자식과 스스로가 달리 살아갈 수 있었던 기회를 날려버렸다.
이번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자 교육부는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최근의 학교폭력 양상을 분석한 범부처 대응책을 이달까지 마련하겠다고 한다.
교육부는 지난달 27일 기자단 정례브리핑을 통해 “최근에 발생한 사안과 관련해서 사회적으로 우려와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어 그런 부분을 논의하겠다”라며 “학교폭력 근절대책을 3월 말 정도에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현 정부에선 지금까지는 학교폭력 근절대책도 없었다는 아이러니한 발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