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윤석열 정부가 시행령을 바꿔 검찰 수사권을 확대하는 등 이른바 ‘시행령 통치’를 하고 있다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시행령 쿠데타’의 대표 사례로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설치와 검찰의 수사개시 범위를 시행령 개정으로 확대하는 ‘검수원복’을 꼽았다.
이미 행안부 내 경찰국이 설치됐고 검수원복 관련 법무부 시행령 개정안도 전날 차관회의를 통과해 오는 6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실시될 예정이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시행령을 개정해 행안부 내 경찰국을 설치한 데 대해 “경찰이 행안부에 종속되면 전두환·노태우 정권의 상황으로 돌아가 경찰이 정권 입맛에 맞게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며 “심각한 역사의 퇴행이 우려된다”고 언급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불과 100여일 지났다. 20%대의 지지율이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 스스로 지지율을 올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내각제라면 통치불능의 지지율이다. 홍수를 맞아서는 ‘무정부상태’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의 흐름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국민이 정치에 요구하는 기대치는 무척 높아졌는데, 정당들은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지 않는다. 정당들의 노력이 기대에서 동떨어져 있으니 유권자들은 투표에 대한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고 번민한다. 대선 결과를 무르고 싶은 심정이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방안으로 ‘대통령 명퇴 개헌’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명퇴개헌 이라는 착상은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제기됐던 ‘해고 개헌’ 구상에서 출발한다. ‘해고 개헌’은 2016년 ‘최순실 게이트’ 당시 청와대 점거농성에 들어간 것 같았던 박근혜 대통령을 어떻게 물러나게 할 것인가, 라는 고민의 결과물로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공론장에서 활발하게 토론되지는 못했다.
우리 헌법 제128조 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되어 있다. 우리 6공화국 헌법은 독재정권을 경험한 역사를 반영하여, 현직 대통령이 개헌을 통해 권력을 연장하려는 시도를 철저하게 분쇄하기 위한 조항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만한 점 하나는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이 효력이 없는 것이지 ‘임기 변경’의 효력까지 없다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즉, 우리 헌법에 따르면 개헌을 하면서 현직 대통령의 임기를 연장하는 것은 안 되지만 줄이는 것은 가능하다.
말하자면 임기 5년을 보장받은 대통령에 대한 예외적 제어장치가 ‘탄핵’ 이외에도 하나 더 있는 것이다. 이른바 ‘임기 단축 개헌’이다. 국회의원 정수의 2/3인 의원 200명 이상과 과반수 국민의 동의가 필요할 뿐,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윤석열 대통령처럼 ‘무언가를 열심히 해서’ 문제인 경우보다 ‘최소한의 해야 할 일을 거의 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탄핵 논리를 세우는 것보다 ‘대통령 임기 단축’에서 해법을 찾는 것이 더 적절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는 ‘변화된 사회문화 환경을 반영하기 위한 총체적인 개헌’에 대한 요구도 나온다. 그러나 그 이전에 ‘개헌이 좀 더 쉬운 권력구조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지금의 5년 단임제 체제에선 임기 초반엔 현직 대통령이, 임기 후반엔 여야 대선주자들이 개헌 논의를 경계하기 때문에 개헌이 지극히 어렵다.
따라서 국민의 열망을 크게 거스르지 않은 ‘최소 수준의 과도기적 개헌’이 먼저 필요하다. 대통령제에 한계를 느끼면서 내각제를 논하는 이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그 방향은 국민 다수가 원하는 바는 아니다. 현재 여러 조사에서 확인되는 국민들이 선호하는 권력구조 개편안은 ‘4년 중임제’다. 이렇게 ‘과도기적 개헌’이 한 번 이뤄지고 나면 ‘근본적인 개헌’으로 나아갈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4년 중임제에 합의한다면,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는 임기를 어떻게 교차시킬 것인가가 된다. 임기를 동일하게 맞추면 대선과 총선의 관계를 매번 동등하게 정립할 수 있다. 방법은 2가지다. 하나는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실시하는 것이다. 둘째는 대통령 임기의 절반 지점에서 총선을 실시하여 중간평가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말기의 ‘원포인트 개헌안’은 전자를 추구했다. 노무현 대통령 본인이 임기 초 경험했던 여소야대 정국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제안이었다. 이와 달리, 임기가 일치하는 것보다는 교차하는 것은 ‘빠른 피드백’을 원하는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권력의 견제와 균형에 이롭다. 프랑스의 경우처럼 개헌을 하면서 대통령과 의회의 임기를 일치시켰더니 의원 선거와 대선에서 동시에 승리한 대통령을 임기 동안 견제하기 어려워지는 사례도 있다.
반면 임기를 교차시켜 미국처럼 총선이 임기 중반 중간평가의 역할을 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대통령이 유능하다면 설령 여소야대로 시작한다 해도 2년 후 총선에서 여대야소로 뒤집은 후 재선에 성공하고, 최대 6년간 책임 있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반면 대통령이 무능하다면 설령 여대야소로 시작한다 해도 2년 후 총선에서 중간평가를 당한 후 4년 임기만 채운 뒤 정권교체를 당하거나 당내 경선에서 교체될 수 있다.
문제는 시기를 맞추려면 임기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임기는 연장할 수 없다. 따라서 ‘개헌이 좀 더 쉬운 권력구조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개헌’은 반드시 ‘대통령 임기 단축’을 수반해야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지금의 5년 단임제 대통령제는 ‘대통령이 국민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여 비상한 권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때’ 효능감이 높은 체제다. 문제는 대통령이 국민의 요구 조건을 무시할 경우엔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지율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는 전형적으로 후자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4년 중임제, 대통령-국회의원 임기 교차 체제’로 이행할 경우 국민에게 효능감이 높은 대통령의 권력은 유지하되 최소 2년마다 중간평가가 가능한 절충형 구조가 된다. 현 시점에서 국민들이 권력에 대해 가진 기대 요인은 유지하되 불만 요인은 보완하는 방식이다. 좀 더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개헌안 역시 이 체제로의 이행 이후에 더 쉽게 논의될 수 있다.
즉, 한 정치인이 ‘임기 단축 개헌안’이란 제안을 적극적으로 선거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된 뒤, 여야 합의로 공약을 실행하고 ‘7공화국의 산파’라는 명예를 얻으며 역사에서 퇴장하는 그림을 그려야 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상황은 아니다. 그럼에도 현재의 지지부진한 정국에서 이 개헌안 아이디어는 새로운 돌파구로서의 기능을 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이 아이디어를 현실 세계에서 실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가령 문재인 대통령 임기는 ‘4년 중임제, 대통령-국회의원 임기 교차 체제’로 이행할 적기였다. 2017년에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를 거의 단축하지 않고도 2022년에 물러날 경우, 2020년 총선과 2024년 총선의 정중앙에 신임 대통령이 취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로는 대선 5년과 총선 4년 주기를 맞추는 데 20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들의 임기를 줄이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 특정한 시기를 제외하면, ‘4년 중임제, 대통령-국회의원 임기 교차 체제’로 이행하는 ‘임기 단축 개헌안’이란 착상은 신임 대통령의 희생이 필요한 것이다.
즉, 한 정치인이 ‘임기 단축 개헌안’이란 제안을 적극적으로 선거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된 뒤, 여야 합의로 공약을 실행하고 ‘7공화국의 산파’라는 명예를 얻으며 역사에서 퇴장하는 그림을 그려야 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상황은 아니다. 그럼에도 현재의 지지부진한 정국에서 이 개헌안 아이디어는 새로운 돌파구로서의 기능을 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