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역사가 크게 바뀌고 경찰국이 신설되었다. 권력에 민감한 것은 계급에 의하여 존재하는 집단이다 보니 경찰의 집단 항명도 잠잠해졌다.
이번 행안부 경찰국장에 임명된 자가 바로 몇 차례 성민 동내에서 문제가 제기된 김순호이다. 김순호는 1년 선배인 최동 열사와 함께 인노회 활동을 하던 중 1989년 갑자기 잠적했다. 그리고 반년 뒤 안보특채 경찰관이 돼서 나타났다.
그의 잠적이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나라 노동 운동사에 남을 대대적 노동운동 탄압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최동열사 연행 당시 경찰은 인노회에 대하여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최동열 사의 죽음과 인노회탄압에는 김순호의 반년간의 잠적 당시의 행적에서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김순호는 노동운동을 하다 반년간 고시 공부를 하다 노동운동에 회의를 느껴 치안본부를 찾아가 자기 고백을 했다는 등 횡설수설하고 있지만, 당시 공안 경찰이 개인의 자기 고백이나 들어줄 한가한 기관이 아니었음을 김 국장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김순호의 사회 경력이 인노회 뿐인 김 국장이 탁월하다는 증거분석능력을 발휘한 사건이 1989년 인노회 사건 외에 무엇이 있는지… 행안부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이유는 군사독재 치안본부 시절 불법 정치사찰 고문 인권탄압의 불행 역사 때문일 것이다.
박정희는 남로당 군사담당 책임자였다. 한국전쟁 직전 발생한 여순사건의 주모자로 체포됐으나 곧바로 전향했다.
자신의 ‘세포’ 전원을 밀고해 조직을 일망타진한 공을 인정받아 군으로 복귀했다. 황국신민이 될 것을 맹세하는 혈서를 써 만주군 장교가 되었던 그는 일제 패망으로 세상이 바뀌자 남로당 간부로 변신했고, 여순사건 후에는 다시 전향해 국군 장교로 둔갑했다.
그가 나타낸 전향과 변절 과정은 일반의 상상을 초월한다. 쿠데타로 최고 권력자가 된 뒤에는 북에서 특사로 보낸 자신의 맏형 박상희의 절친 황태성까지 죽였다. 황은 그가 친형처럼 따르던 한 고향 출신의 ‘이념적 형님’이었다.
정신의학자들은 변절한 인간은 쉽게 저열한 욕망의 노예가 되어 주지육림에 빠져드는 특성을 보인다고 진단한다.
가치와 신념을 내던지고 변절할 경우 인간으로서 정체성을 잃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 부끄러운 과거를 잊으려고 했는지 모르나 박정희는 살아 있을 때 술을 엄청나게 마셔댔다.
심복의 총탄에 맞아 죽은 마지막 순간에도 여자들을 곁에 두고 술판을 벌였다.
우리는 뜻이 맞은 친구를 ‘동지’라고 부른다. 옳은 일에 대해 변치 않는 신념과 실천을 공유하는 동반자를 뜻하는 이 말이 아무한테나 붙여지진 않는다.
독재에 저항한 사람들의 강한 동지애는 엄혹한 시절에 비밀경찰과 공안검찰의 감시와 탄압을 받으면서도 그 극한의 역경을 이겨낸 큰 힘이 되었다.
그 시절에는 구타와 몽둥이질은 기본이고 물고문과 전기고문, 통닭구이를 비롯한 별의별 지독한 고문이 공공연히 자행되었다.
‘인간 백정’으로 불린 고문 기술자들은 사람을 짐승 다루듯 했다. 최고의 ‘기술자’ 이근안이 고위직까지 출세한 것도 민주 인사들을 상대로 갖은 악랄한 고문 수법을 구사해 정권의 입맛대로 허위 자백을 잘 받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민청련 활동가인 김근태, 이을호뿐 아니라 언론인 송건호, 김태홍 등도 그들의 무자비한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을 이기지 못해 일찍 세상과 작별해야 했다.
고문자들은 심지어 참고인으로 끌고 간 박종철을 물고문하다 숨지게도 했다.
하지만 이 끔찍한 어둠의 시대에도 불의를 이기는 힘은 동지에 대한 강한 믿음과 역사가 진보하리라는 굳은 신념에서 나왔다.
부정의하고 부패한 세력은 필경 인간의 선한 의지로 종말을 맞게 되리라는 믿음이 그것이다.
이곳이 변절자와 동지의 행로가 갈리는 지점이다.
한 번이라도 배신한 적이 있는 자는 반드시 또 배신하게 돼 있다.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 되풀이되는 까닭은 이들이 이미 인격분열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인격이 무너진 자들은 사익을 위해 한순간 서로 돕다가 배신하기도 하는데, 결국 다툼 끝에 공멸하는 법이다.
정부가 신임 경찰국장으로 노동운동 프락치 출신으로 특채된 의혹이 있는 인물을 발탁했다.
그가 과거 무슨 짓을 얼마나 했는지는 공직 수행에 앞선 필수 검증대상이 돼야 검찰개혁을 철석같이 믿게 하고 검찰총장에 임명된 뒤에는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진 윤석열 대통령의 선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고위 공직자의 공적 심리는 전체 공직사회의 기준이 된다.
위헌·위법 논란을 무시하고 강행된 윤석열 정부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임 경찰국장으로 임명된 김순호 경찰국장이 80년대 민주화 노동운동 와해 공작의 당사자였다는 의혹에도 그는 노동운동을 하다 숨진 동료들보다 성공의 길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