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식 정치 ‘쇼통’ 신의를 잃은 리더십의 말로

 

흔히 말하기를 정치는 ‘말’로 한다고 한다. 정치인의 정치적 행위는 곧 ‘말’로 시작되고 그 ‘말’에 따른 ‘행동과 실천’으로 옮겨져야 하기에, 특히나 정치인들에게는 ‘언행일치’가 도덕성과 신뢰성의 척도가 된다. 대중을 움직이고 대중을 설득하고 자신의 정치 노선과 이념을 설파함에서도 정치인의 ‘말’은 곧 ‘생명줄’과 같은 것이다. 그만큼 ‘말의 무게’와 ‘책임성’이 크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말이 모두 이런 기준과 바램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아니 어쩌면 우리 정치 현실에서는 정치인의 말이 때론 국민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분노’를 자아내는 경우가 더 비일비재하다.정치인이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하는 사회적 자본은 신의가 첫째로 꼽힐 터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국가 지도자가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이 신의이다.

 

우리 사회는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신의를 지키지 않을 때 이는 곧잘 사회적 갈등과 불신을 키운다. 예부터 왕과 신하, 백성 상호간, 스승과 제자, 부부 사이, 부자 관계, 친구 사이에서 가장 중시된 덕목은 가장 중요한 도덕적 기준이자 판단 근거이었다.

 

춘추전국시대 태(秦) 나라의 실력자 공손(公孫) 앙(鞅)은 위 나라에서 사이좋게 지냈던 공자(公子) 앙(卬)을 전쟁터에서 상대국 장수로 맞는다. 하지만 공자 앙에게 과거 인연을 미끼로 서로 싸우지 말고 동시에 병력을 철수시키자며 거짓 화친을 제의한다. 그는 이에 속은 공자 앙을 불러내 붙잡아 죽이고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신의는 무너진다. 새로 등극한 왕이 ‘믿음이 안 가는 인물’이라는 최종 판단을 내린 것이다. 위기를 직감한 그는 다시 위 나라로 피신했으나 하급 현령으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한다. “그대는 친구를 배신한 사람이니 내가 당신을 챙겨주어야 할 도의란 찾을 수 없다”라고 내쫓은 것이다. 속임수로 권력에 오른 자의 배신행위가 낳은 인과응보이다.

 

권력자들은 주로 사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배신하곤 한다. 무릇 사익에 빠진 자들은 처음에는 서로 돕지만, 나중에는 미워하다가 결국 몰락의 길을 걷고 마는 법이다.

 

정치인의 말은 곧 생명이요 길이다. 설저유부(舌底有斧)라는 말이 있다. ‘혀 밑에 도끼 있다’는 뜻이다. 정치인이든 대권 주자든 소시민이든 누구나 ‘말’로 인해 덕을 보기도 하고 화를 입기도 하는 게 인생사이다. 누구나 혀 밑에 ‘도끼’를 품고 사는 건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혀를 잘 쓰면 도끼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신의와 함께 지혜가 공직자의 소중한 덕목이라고 역설하는 역사적 사례도 넘쳐난다. 나라를 망칠 군주는 겉보기에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고, 간신 역시 충신처럼 위장하니 제대로 사람 됨됨이를 살필 일이다.

 

역사는 지혜를 갖춘 권력자의 작은 선(善)은 큰 선을 불러오지만 어리석은 자의 작은 악은 큰 재앙을 불러온다고 가르친다. 중국의 서주(西周) 왕비 포사가 나라를 망친 것도 유왕이 지혜를 못 갖추고 그녀의 작은 즐거움에 집착했던 탓이다. 결국, 나라는 망해 삼공(三公)과 구경(九卿)의 신하들이 모두 달아나 버리고 유왕 자신도 참극을 당하니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주변 시위에 대해 “대통령 집무실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인데 법에 따라 되지 않겠나”라고 말한 것과 관련해 유감을 표명한다.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한 것에 대해 "국민 기본권 파괴하는 반지성적 행위를 그대로 두자는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이 집회‧시위에 대해 가진 인식과 국민의 기본권이 파괴되고 있는 현장을 내버려 두겠다는 생각, 그리고 국민의 기본권을 적극적으로 지켜야 할 경찰에게 대통령 눈치를 보게 만드는 국정운영 방식에 매우 유감이다.

공인인 대통령은 더욱더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말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생각할 공간이 필요하다. 말할 가치가 있는지‘ 무익한지 잘 생각해야 한다. 내뱉은 말은 돌이킬 수 없고 상대에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신뢰의 위기를 맞았다. 윤석열 자신이 전임 대통령에게 검찰 개혁을 철석같이 약속해놓고 이를 배신해 최고 권력에 오른 사람이다. 나아가 검찰 조직을 진두지휘해 개혁을 추진하는 인사를 도륙을 내더니 대통령이 된 이후는 아예 검찰 공화국의 건설에 몰두하는 듯하다.

 

또한, 그 부인은 엉터리 논문에 허위 이력,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등 도덕적 기준을 넘어 중대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남편의 ‘법과 원칙’ 적용 기준에서는 예외인 듯하다. 도덕적 틀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새 정부에서 신뢰는 누구에게 구할까?

 

개인이나 법인, 특히 모든 권력은 유한한 생명체이다. 언젠가는 흥망성쇠를 겪게 마련이다.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시민들의 어깨가 이제 조금 더 무거워졌다. 기본적 신의마저 저버린 불의한 권력에 맞서는 일이 우리 역사 앞에 놓인 것이다.

 

보여주기식 정치를 ‘쇼통’으로 부르는 이유는 국민의 감성과의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를 위한 리더로서의 신념이 개인의 영달을 위한 수단으로 바뀔 때 국민은 단순한 선동의 대상일 뿐일 것이다. 감성의 원죄적 성격을 비난하기 전에 그것을 이용하는 정치인들의 사악함을 정죄해야 한다. 오직 자신과 조직만을 위해 모습을 바꾸는 위정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것만이 잘못된 길을 돌아가는 최고의 방법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마당 나뭇가지 흔들리는 것 못 느끼나” 대통령이 지방선거 직후 복합위기를 태풍에 견주고, “정치적 승리를 입에 담을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 절박감은 어디 가고, 여당은 성비위에 휩싸인 대표와 ‘윤핵관’의 권력다툼에 여념 없다. 저리 시작할 걸, 국회는 왜 5주나 공전시켰나 민생을 떠나 여당이 설 곳은 없다. 애당초 정권교체만 외쳤지 뭘 하겠다고 한 건 손에 꼽는다. 부자감세 낙수만 기다리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5년 만에 잡은 권력에 다들 취해 있다.

 

다산 정약용이 ‘식위정수(食爲政首)’라고 했다. 인재를 등용하는 ‘용인(用人)’과 국부를 키우는 ‘이재(理財)’도 큰 정치이나, ‘먹이는 것이 정치의 으뜸’이라 한 것이다. 나흘 전 과일·고기를 두 달째 못 먹고, 끼니 거르고, 폭염에 선풍기도 틀지 않는 기초수급자 가계부가 공개됐다. 민생고의 끝도 가늠키 어렵다. “지지율 의미 없다”는 대통령은 배짱이고 불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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