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듣는 이야기들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일반적인 가치에 반하는, 때로는 입에 담기도 어려운 뉴스나 사건 사고에 마음에 상처를 받는 것이다. 오죽하면 옆 사람에게 “진짜 말이 되는 얘기야?, 이해할 수 있어?”라고 되묻기도 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어찌할 바를 모를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본인들과 직접 관계가 없거나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일들은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누굴 탓할 수 없는 일들이고 또 우리는 그렇게 흘려 버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세상은 절대로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방어기제(防禦機制)가 ‘우리’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냈듯이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다 같이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혼자가 아닌 두 사람 이상만 모이면 ‘우리’라는 특별한 언어로 친밀감을 나타내기도 하고, 사안에 따라서 넓게는 지구촌 모두가 ‘우리’에 포함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라는 1인칭 복수는 공동체의 필요조건이며 공동체의 기본 단위인 것이다. ‘공동체(Community)’라는 말은 14세기에 영어권에서 처음 사용했다. 라틴어 ‘커뮤니타스(Communitas)’를 어원으로 하고 있다. 이는 공동체 안에서 강한 유대감과 연대감뿐만 아니라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연결되는 감정을 포함하고 있음이다.
따라서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은 개인이 아닌 타인을 먼저 존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서로의 가치관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가능한 것이다. 즉 공동체는 서로의 노력과 배려를 통해서 만들어진다. 이러한 공동체는 사람들의 삶과 생활에 있어서 인간다움이라는 존재적 가치로 귀결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남자와 여자가 따로 있지 않고, 가진 자와 없는 자가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가 한 가정에 귀한 자녀이고 그 자체로 사랑인 것이다. 옛 어른들은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한 줄 알아야 한다.”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는데, 이는 사랑과 관심이 타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의 변혁을 도모한 사상가이자 계몽주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J. J. Rousseau, 1712~1778)는 『사회계약론』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정의로운 사회는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면서 ‘일반의지는 관념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실천을 전제하고 있고, 선한 목적이 정해지지 않은 일반의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공동체라는 것이 개인의 이기심을 넘어서 공동의 선(good)을 실현하는 시민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음이다.
또한,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이클 샌델(M. Sandel, 1953~ ) 또한 “개인의 권리는 공동체적 책임과 분리될 수 없으며, 정의로운 사회는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작금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공동체라는 의미가 자꾸 희미해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은 이웃의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으로 드러나곤 한다. 이는 구성원 간의 신뢰, 협력, 질서, 안전, 정의를 해치거나 해체 시키는 직·간접 행위들로, 공동체 자원을 사적으로 남용하거나 책임 회피, 불성실한 일 처리 등이 포함된다. 그뿐만 아니라 거짓말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시키거나 신체적·언어적 폭력을 행사함과 동시에 쓰레기를 무단으로 투기하는 등의 환경 훼손, 또 음주운전 등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체의 행위들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라는 가치와 ‘공동체’의 중요성이 더욱 간절함으로 다가오는 시절이다. ‘우리 공동체’라는 성숙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바른 교육과 자숙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이다. 공동체라는 단어는 우리의 생존과도 직결된, 정말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우리 공동체’라는 이데아(Idea)를 마음에 품어보자. 기본적인 상식과 보편적 가치가 통용되는 사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그곳을 품는 것이다. 이러한 성숙한 공동체는 나이와 직업, 성별이나 출신 등에 차별받지 않고 평등한 권리와 의무를 지며 내일의 희망을 꿈꾸는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곳이다.
‘사람 냄새’의 본질은 ‘더불어 사는 공간’에서 시작한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 모든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도시는 ‘대우주 세계’의 일부일 뿐이다. 수많은 종류의 공동체가 유기적으로 공존하는 우주의 질서가 있는 곳이다. 이러한 세계가 이데아(Idea)가 아닌 ‘지금’ 나로부터 시작해서 지역사회로, 더 나아가 지구촌 모든 곳에 스며들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