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원료 공급단지, 290억 들여 저장창고만?…해남군 행정 설계부터 다시 따져야!

절임 배추 생산시설 빠지고 ‘저장시설 중심’으로 축소…사업성·실효성 논란
평당 건설비 최대 3배 차이 의문…“발주처가 다르다고 이 정도 차이?”
“가공공장도 없는데 저장만 해서 경쟁력 있나?”…해남군, 사후 공모사업에 기대

 

전남투데이 최영남 기자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이 산이면 솔라시도 기업도시 부지에 추진하고 있는 김치 원료 공급단지 조성사업이 사업의 당초 취지와 달리 대규모 저장시설 중심으로 축소되면서, 막대한 군비가 투입되는 사업의 실효성과 경제성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해남군의회 행정사무 감사에서 제기됐다.

 

특히 총사업비 290억 원 가운데 군비만 121억8,000만 원이 투입되는 사업임에도 절임 배추 생산 등 당초 계획했던 가공 기능은 빠지고 저장시설 위주로 사업이 추진되고 있어 “결국 비싼 저장창고를 짓는 사업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해남군의회 농수산경제위원회는 지난 7일 주요 사업장 현지 확인에 나서 산이면 솔라시도 기업도시 부지에서 추진 중인 김치 원료 공급단지 조성사업 현장을 점검했다.

 

*. 290억 투입해 배추 약 4,000 톤 저장

김치 원료 공급단지는 배추 가격이 하락할 때 물량을 대량 저장해 수급을 조절하고 가격을 지지함으로써 농가 소득을 높이고 유통 구조를 개선한다는 취지로 추진됐다.

 

사업비는 총 290억 원으로 국비 116억 원, 도비 52억2,000만 원, 군비 121억8,000만 원이다.

 

현재 계획에 따르면 장기저장시설 1개 동을 포함해 저온저장창고 6개 동과 사무동 등이 들어선다. 저장능력은 약 4,000톤 규모다.

 

이는 지난해 수확량을 기준으로 해남 가을배추 생산량의 약 2%, 겨울 배추 생산량의 약 1.8%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 정도 규모의 저장시설이 해남 배추산업 전체의 유통 구조를 바꿀 만큼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저장 이후 배추가 다시 시장으로 이동해야 하는 구조라면 저장시설 자체가 물류비를 추가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평당 900만 원”…공사비 차이부터 이해시켜야!

현장에서 더 큰 논란이 된 것은 공사비였다.

 

해남군의회 농수산경제위원들은 사업비를 분석한 결과 평당 약 900만 원의 건설비가 소요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농협 등이 구축하는 저장시설의 경우 평당 약 300만 원 수준이라면 발주처에 따라 건설비가 2~3배 차이 나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농수산경제위원들은 현장을 확인한 뒤에도 “자재 등에 특별히 다른 점이 보이지 않는다”며 공사비 차이에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 군과 공사 관계자는 계약 방식과 자재 품질, 유지 관리 조건 등의 차이가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러나 행정의 설명은 여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 공사비가 왜 그렇게 책정됐는지, 설계·감리·계약 과정에서 어떤 기준이 적용됐는지, 유사 저장시설과 비교했을 때 적정한 수준인지 객관적인 자료로 검증해야 한다.

 

특히 군민 세금이 121억8,000만 원이나 투입되는 사업이라면 “계약 방식이 달라서 그렇다”는 설명만으로 군민들의 의문을 해소하기는 어렵다.

 

*. 당초 ‘김치산업 기반’에서 ‘저장창고’로…왜 이렇게 됐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사업 자체가 당초 계획과 상당 부분 달라졌다는 점이다. 김치 원료 공급단지는 당초 절임 배추 생산 등을 중심으로 추진됐다.

 

하지만 각종 행정절차 이행으로 사업이 지연됐고, 그 사이 물가 상승으로 공사비가 크게 올랐다. 더구나 절임 배추 가공시설을 설치하려면 폐수처리시설이 필요했지만 사업부지의 특성상 높은 수준의 방류기준을 충족해야 해 관련 비용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절임 시설은 빠지고 저장시설 중심으로 사업계획이 변경됐다.

 

여기서 행정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처음부터 사업부지의 입지 조건과 폐수처리 문제를 충분히 검토했는가?

절임 배추 가공시설을 포함한 당초 사업계획의 경제성은 제대로 분석했는가?

사업 지연으로 인한 공사비 상승 가능성까지 감안한 사업계획이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해야 한다.

 

*. “저장만 해서 경쟁력 있겠나?”…의회에서도 우려

농수산경제위원인 김 모 의원은 “인근에 가공공장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단순히 저장창고만 지어 놓는다면 오히려 밭에서 직접 거래하는 것보다 물류비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 모 의원 역시 준공 이후 위탁 운영을 계획하고 있는 만큼 각 농협이 직접 저장시설을 구축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취지의 문제를 제기했다.

 

핵심은 간단하다. 배추를 저장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저장→가공→유통→판매로 이어지는 산업구조가 갖춰져야 저장시설의 경제적 가치도 살아난다.

 

가공시설도 없고 대규모 수요처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배추를 한곳에 모아 저장했다가 다시 운송한다면 물류비만 증가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 “나중에 공모사업으로 가공시설 추가”…사후 보완이 답인가?

해남군은 우선 저장시설을 조성한 뒤 향후 공모사업 등을 통해 가공사업을 추가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수백억 원이 투입되는 사업에서 핵심 기능을 나중에 채우겠다는 방식이 과연 적절한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사업의 핵심인 가공 기능이 빠진 상태에서 저장시설부터 완공한 뒤 추가 공모사업을 통해 부족한 시설을 채우겠다는 것은 자칫하면 행정이 사업의 완성도를 사전에 확보하지 못한 채 시설부터 짓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공모사업에 선정된다는 보장도 없다. 결국, 해남군은 준공 이후 운영 주체와 운영비, 물류비, 저장료, 이용 농가, 가공시설 확보 방안, 판로까지 포함한 구체적인 운영계획과 수익성 분석을 군민 앞에 공개해야 한다.

 

*. ‘짓는 행정’에서 ‘돈 되는 행정’으로 바꿔야!

해남은 전국적인 배추 주산지다. 그렇다면 김치 원료 공급단지는 단순한 창고 건설사업이 아니라 해남 배추산업의 유통·가공구조를 바꾸는 핵심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처럼 당초 계획했던 가공 기능은 빠지고 저장시설만 남은 상태라면 사업 목적과 결과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생길 수 있다.

 

더욱이 공사비까지 다른 유사시설보다 크게 높다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해남군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사업을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다. 사업비가 적정한지, 저장시설만으로 사업성이 있는지, 준공 이후 누가 운영할 것인지, 물류비를 감안해도 농가와 이용자에게 실익이 있는지, 가공시설을 추가하지 못할 경우 어떤 대안이 있는지부터 다시 따져야 한다.

 

행정은 시설을 준공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군민의 세금이 들어간 사업이라면 ‘무엇을 지었느냐’보다 ‘왜 지었고, 얼마나 활용되며, 군민에게 무엇을 돌려주느냐’가 더 중요하다.

 

해남군은 이번 행정사무 감사에서 제기된 의회의 문제 제기를 단순한 지적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

 

290억 원짜리 김치 원료 공급단지가 ‘배추산업 혁신의 거점’이 될 것인지?, 아니면 거액의 예산을 들여 지은 ‘대형 저장창고’로 남을 것인지? 이제부터 해남군의 행정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군은 공사비 산정 근거와 당초 사업계획 변경 과정, 경제성 분석 자료, 향후 운영계획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업 전반을 원점에서 재점검해야 한다.

 

그것이 행정사무 감사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군민 세금을 지키는 최소한의 행정적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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