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투데이 최영남 기자 | 대통령상은 거창한데 참가자는 초라하다.
전국대회라는 이름은 요란한데 경쟁의 무대는 너무 좁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대통령상인가?
제35회 땅끝 해남 전국국악 경연대회가 막을 내렸지만, 대회를 바라보는 국악계의 시선이 편치 않다.
이번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놓고 경쟁한 명인부 참가자는 무용 8명, 고수 8명, 기악 8명, 판소리 8명 등 모두 32명이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판소리 부문에서는 4명이 기권하면서 결선에는 4명만 올라갔다. 결국 대통령상을 놓고 치러진 전국 규모 대회에서 실제 경쟁에 참여한 인원이 30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참가자 숫자만으로 경연대회의 수준이나 참가자들의 실력을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다. ‘전국국악대회’라는 이름과 ‘대통령상’이라는 최고 권위에 걸맞은 대회 규모와 운영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대통령상은 큰데, 경쟁은 왜 이렇게 작은가?
전국의 국악인들이 참여하는 대회라면 전국 각지에서 실력 있는 참가자들이 몰려들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최고상을 가리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이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상을 놓고 경쟁하는 명인부에서 부문별 참가자가 8명 수준에 그치고, 한 부문에서는 결선 참가자가 4명에 불과했다면 대회의 위상과 경쟁 구조에 대해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상이라는 이름만 크고 정작 경쟁의 장은 좁아진다면 그 상의 권위는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상황이 단 한 번의 우연한 현상인지, 아니면 최근 몇 년간 반복되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인지에 대한 검증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전국대회라면 전국의 국악인들이 왜 이 대회를 선택하지 않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상금이 부족한 것인지? 대회의 인지도가 떨어진 것인지? 심사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것인지? 운영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협회와 이해 관계자들의 간의 밝혀지지 않는 미스테리한 의문 때문인지? 원인을 찾아야 한다.
참가자가 줄어드는 것은 단순히 참가자들의 문제가 아니다. 대회를 운영하는 측이 가장 먼저 책임 있게 들여다봐야 할 신호다.
“전국대회”라는 이름만 붙이면 전국대회인가? 전국 각지에는 수많은 국악 경연대회가 존재한다. 그 가운데 일부는 오랜 역사와 엄격한 심사, 치열한 경쟁을 통해 명성을 쌓았다.
반면 지방자치단체나 관련 단체가 예산을 투입해 대회를 개최하면서도 해마다 참가자가 줄어드는 대회도 적지 않다.
이런 대회가 계속해서 ‘전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최고상에 ‘대통령상’이라는 명칭을 내걸어도 되는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전국대회라는 이름은 간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전국에서 참가자가 찾아오고, 전국의 실력자들이 경쟁하며, 공정한 심사를 통해 수상자를 배출할 때 비로소 전국대회라는 이름에 걸맞은 권위가 생긴다.
또한 전국대회라는 간판만 걸어놓고 참가자는 줄고 경쟁은 약해진다면 결국 남는 것은 간판뿐이다.
더 큰 문제는 ‘심사위원 논란’까지 겹쳤다는 것이다. 이번 대회는 참가자 숫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제기된 심사위원 선정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 논란까지 겹치면서 대회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더욱 커지고 있다.
지역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국악인들이 있음에도 외부 인사 중심으로 심사위원을 구성했다면 그 자체가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왜 그렇게 구성했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누가 추천했는지? 누가 최종 결정했는지? 어떤 기준으로 심사위원을 선정했는지? 참가자와 국악계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특히 대통령상을 결정하는 대회라면 심사위원 구성과 심사 기준은 더욱 투명해야 한다. 참가자는 적고 심사위원 선정은 논란이고, 대통령상은 거창하다면 과연 누가 이 대회의 권위를 믿겠는가?
대통령상은 ‘참가자 몇 명 중 1등’에게 주는 상이 아니다. 대통령상이라는 이름에는 무게가 있다. 전국에서 최고의 기량을 가진 국악인이 경쟁해 그중 가장 뛰어난 예술가에게 돌아간다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쟁자가 지나치게 적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나온다.
“전국 최고의 국악인을 뽑는 것인가? 참가자 가운데 한 명을 뽑는 것인가?”
물론 참가자가 적다고 해서 수상자의 실력이 낮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통령상이라는 상의 권위를 생각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가했는지? 어떤 수준의 참가자들이 경쟁했는지? 경쟁의 질은 어땠는지? 역시 대회 운영의 중요한 지표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판소리 명인부의 경우 8명이 신청했다가 4명이 기권해 4명이 결선을 치렀다는 것은 운영 측에서도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왜 기권했는지? 참가자들이 대회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대회 운영에 개선할 점은 없는지?를 물어야 한다.
이제는 ‘대통령상’이라는 이름부터 점검해야 한다. 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해마다 행사를 개최하고, 예산을 집행하고, 대통령상을 수여하고, 사진을 찍고, 보도자료를 내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국악 발전이 아니라 행사를 위한 행사가 될 위험이 있다.
땅끝 해남 전국국악 경연대회가 정말 국악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참가자 수부터 심사제도, 상의 권위, 운영 방식까지 전반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특히 최근 참가자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면 주최·주관 해남 국악협회 측은 이제 솔직하게 자문해야 한다.
“왜 국악인들이 우리 대회에 오지 않는가?”
그리고 답을 찾아야 한다.
군민들의 혈세를 투입하는 대회라면 더욱 엄격해야 한다.
전국 규모의 국악 경연대회에는 적지 않은 공공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행정기관과 주최·주관 해남 국악협회는 단순히 행사를 개최했다는 실적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얼마나 많은 참가자가 왔는지? 전국적인 명성을 확보했는지? 대회가 국악 발전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예산에 걸맞은 성과를 냈는지? 평가해야 한다.
참가자가 줄어드는 대회를 매년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하면서 “전국대회”라는 간판만 유지하는 것이 과연 세금으로 지원할 가치가 있는 대회인지 따져봐야 한다.
대통령상이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대회의 권위가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대회의 권위는 참가자들이 만들고, 공정한 심사가 만들며, 운영의 투명성이 만든다.
땅끝 해남 전국국악 경연대회, 이제는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이번 제35회 대회를 계기로 주최·주관 해남 국악협회 측은 단순한 해명에 그칠 것이 아니라 대회 전체를 돌아봐야 한다.
▲ 왜 참가자가 감소하고 있는가?
▲ 왜 명인부 참가자가 부문별 8명 수준에 머물렀는가?
▲ 왜 판소리 명인부 결선 참가자가 4명에 그쳤는가?
▲ 기권자들은 왜 대회를 포기했는가?
▲ 심사위원은 어떤 절차로 선정했는가?
▲ 대통령상 심사 기준은 무엇인가?
▲ 참가자와 심사위원 사이의 이해관계는 없는가?
▲ 대회 예산에 비해 참가 규모와 성과가 적정한가?
이 모든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심사위원 선정부터 참가자 모집, 경연 방식, 시상제도까지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대통령상”이라는 이름이 대회의 허술함을 가려서는 안 된다. 이제 더 이상 대통령상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상은 대회의 권위를 높이는 장식물이 아니다. 오히려 대통령상이 걸려 있기 때문에 대회는 더욱 엄격하고 투명해야 한다. 전국대회라면 전국의 실력자들이 몰려와야 한다. 대통령상이라면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심사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참가자는 줄고, 결선 참가자는 손에 꼽히고, 심사위원 선정마저 논란이 된다면 이제는 대회 관계자들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대로 제36회, 37회를 계속할 것인가?”
국악은 대한민국의 소중한 전통예술이다. 그 이름을 빌려 행사를 유지하는 것으로는 국악의 미래를 열 수 없다. 땅끝 해남 전국국악 경연대회가 진정한 전국대회로 거듭나려면 이제 ‘대통령상’이라는 간판보다 먼저 대회의 실질적인 경쟁력과 공정성부터 세워야 한다.
대통령상은 참가자가 적다고 값싼 상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참가자가 손에 꼽히는 대회를 계속하면서 그 상의 권위가 영원히 유지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더 큰 착각이다.
전국대회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이제는 대회의 숫자가 아니라 대회의 수준으로 승부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