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이 18일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후보를 당 대표로 다시 선출했다. ‘이재명 2기’를 맞은 민주당은 제1야당으로서 윤석열 정권을 견제하는 한편, 국회 다수당으로서 민생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동시에 안게 됐다. 아울러 당내 ‘통합’을 이뤄내면서 수권정당으로서의 면모도 다져야 한다.
이 대표는 차기 지도부를 뽑는 18일 전당대회에서 85.4% 득표율로 연임에 성공했다. ‘이재명 일극 체제 반대’를 내세운 김두관 후보는 12.1%에 그쳤다. 이날 선출된 김민석 전현희 한준호 김병주 이언주 최고위원도 친명계다. ‘이재명 당의 완성’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입법 권력의 중심에 다시 선 이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의 관계 설정은 진영 갈등과 경색된 정국을 풀 열쇠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4월 총선 참패 이후에도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 은폐,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출장 조사’, 사도 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찬성, ‘뉴라이트’ 논란 독립기념관장 임명, 끝없는 거부권 행사 등 역주행을 오히려 가속하고 있다. 민심의 준엄한 심판에 반성하고 돌이키기보단 오히려 정권 보위를 위해 지지층 결집에만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이런 태도라면 남은 임기 2년 8개월여 동안 국정은 더욱 황폐해질 일만 남았다. 제1야당이 국민 뜻을 받들어 제대로 견제하고, 민심 쪽으로 견인해나가야 한다.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을 포함한 ‘뉴라이트 인사’ 논란은 민생 법안 우선 처리 합의로 훈풍이 부는 듯했던 여야 관계를 급랭시켰다.
이 대표는 전당대회에 나서면서 “‘먹사니즘’이 나의 유일한 이데올로기”라고 했다. ‘민생을 최우선에 두겠다’라는 선언으로 읽힌다. 윤석열 정부는 건전재정과 ‘부자감세’를 동시에 추진하는 데다 경기 위축으로 세수 감소가 겹쳐 정부의 재정 역할이 크게 위축됐다. 여기에 물가 불안까지 겹쳐 민생 문제가 심각하다. 그러나 국회가 마비 상태에 빠져 제대로 된 민생 대책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치 실종으로 22대 국회는 개원 두 달 넘게 법다운 법하나 만들지 못했다. 여야 원내대표가 지난 7일 합의한 여·야·정 협의체 구성은 열흘이 지나도록 별 진척이 없다. ‘톱다운’식 논의를 통해 속도감 있는 민생 법안 처리를 기대했던 국민은 또 한숨만 쉰다.
의회 권력을 쥔 거대 야당 대표의 책임은 더 무거워졌다. 대여, 대정부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이 대표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2대 국회 들어 여야 대치 정국은 풀릴 기미가 없고, 이 대표 2기 체제 들어 사법리스크 부각과 선명성 경쟁에 대결 정치가 더 격화할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이 대표 앞에는 자신을 둘러싼 ‘일극 체제’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할 과제가 놓여 있다. 85.4%라는 압도적 득표율은 당원들에게 인기가 높다는 걸 말해주지만, 동시에 당내 다양성이 부족하고 1인 사당화로 치닫고 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는 이런 분위기에선 향후 이 대표나 지도부가 잘못된 판단을 해도 감히 반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전대 때 그나마 당에 쓴소리했던 정봉주 후보마저도 초반엔 선전하다가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을 비판한 이후 지지세가 약화해 결국 탈락했다. 이렇듯 공당이 다양성을 잃고, 한 사람 또는 특정 세력의 의중대로만 움직인다면 정당 민주주의는 퇴행하기에 십상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수도권 정당’에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 당은 비록 호남 출신 최고위원이 아쉽게 됐지만, 반대로 호남 중심의 정당이 수도권 정당으로 완벽하게 탈바꿈한 것이 역대 최고의 성과로 볼 수 있다.” 당 핵심 관계자가 본보 기자에게 밝힌 평이다. 그도 그럴 게, 수도권이 배제된 국민의 힘 지도부와 비견된다. 한동훈 체제 구성은 ‘도로 영남당’으로 끝났다.
지금부터라도 이 대표와 민주당은 달라져야 한다.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가 구하라 법(민법 개정안), 간호 사법, 전세 사기 특별법 등 비쟁점 법안을 합의 처리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도 있다. 제헌국회 이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극 정당’이 되고 말았다는 우려를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유권자의 절반은 수도권에 모여 있다. 표심의 향방은 선거마다 유동적이다. 그래서 지방선거, 총선 승부는 늘 수도권에서 결판났다. 대통령선거 등 ‘큰 선거’에서는 더욱 그랬다. 민주당 관계자의 ‘수도권 정당 자부심’에 이유가 있다.
이 대표는 “먹고사는 것만큼 중요한 문제는 없다”라는 ‘먹사니즘’을 들고나온 만큼 정부 실정에 대한 견제와 민생 문제를 분리해 수권 정당으로서의 실용적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 정치를 복원하려면 원내 1당의 수장인 이 대표가 많이 듣고 포용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영수회담이나 여야 대표 회담도 방법이다. 이 대표는 그동안 “윤 대통령을 다시 만나고 싶다”라고 수차례 제안했다. 윤 대통령 역시 4대 국정과제인 노동·연금·의료·교육개혁에서 성과를 내려면 이 대표의 협력이 필수다. 취임 한 달을 앞둔 한동훈 국민의 힘 대표와도 자주 소통할 필요가 있다.
정부 여당과의 협치는 이 대표의 대권 도전에도 결코 손해가 아니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민생을 챙겨야 수권 정당 면모를 각인시킬 수 있다. 국민은 지난 2년간 대통령 권력과 입법 권력이 충돌하면 나라가 어떻게 망가지는지 지켜봐 왔다. 꼬인 실타래를 푸는 첫걸음은 신뢰 회복이다. 이 대표 연임이 대화 복원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