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7일 열린 미국 대통령 후보 TV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승기를 잡았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이날 활력이 없는 모습을 보이면서 어눌하게 말을 더듬는 장면을 여러 차례 연출해 고령으로 인한 노쇠함을 숨기지 못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참패 평가와 함께, 민주당 안팎에서 경선 하차론이 분출하고 있다. 토론에서 보인 무기력한 모습에 인지력 저하 등 바이든 대통령의 약점이 크게 부각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외교에 올인해온 우리로선 우려할 만한 미 대선 변화 양상이다.
이번 TV토론 직후 액시오스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유권자의 59%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교체돼야 한다고 답할 정도로 파장이 크다. 친 민주당 성향의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나라를 위해 대선 레이스에서 하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81세 노령의 바이든 대통령이 향후 4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증폭시킨 TV토론인 셈이다. 하지만 바이든은 대선 레이스 완주 의지를 거듭 피력했고, 민주당에 교체 카드도 마땅치 않다. 가장 유력해 보이는 카 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의 러닝메이트로 나선 입장이어서 운신에 한계가 있다. 생각이 위험한 후보와 고령에 위태로운 후보의 불안한 승부에서 전자에 기운 추를 어떻게든 되돌리려는 노력이 이제부터 민주당 진영에서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완수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라며 교체론을 일축하고 있다. 물론 하차 여부는 바이든 대통령의 결심에 달린 일이지만,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확정되더라도 고령 위험성이 한껏 부각한 이상 11월 대선에서 유권자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더 불투명해졌다. 이번 TV토론 이후 동맹국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우세하던 올 초 선거 판세는 최근 박빙으로 바뀌는 흐름이었지만, 트럼프 대세론이 더욱 단단해졌다.
바이든 정부의 동맹외교를 헐뜯어온 트럼프 후보가 재집권할 경우 대외노선이 크게 흔들리는 데 대한 두려움이다. 동맹국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규모 전쟁 지원을 해온 바이든과 달리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후 곧바로 러시아와 대화해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공언했다. 더 커진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은 향후 4년간 한미 동맹에도 큰 변화를 예고한다. 무엇보다 방위비와 관련한 트럼프의 발언은 우리의 고민을 깊게 할 여지가 충분하다. 트럼프는 “방위비 지출만 보더라도 미국과 유럽 사이에는 수천억 달러 차이가 난다며 동맹전략 수정 방침을 내비쳤다. 한국처럼 부유한 나라를 미국 세금으로 지켜주느냐? 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최근 북한과 러시아의 동맹조약 체결 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직접 지원 검토로 대응한 우리로선 큰 혼란이 빚어질 개연성이 크다. 미군 감축 연계는 물론 바이든 정부 들어 이뤄진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 우리의 자체 핵무장 용인 여부, 북미 정상의 직접 협상 등 우리 외교정책에 중대 영향을 미칠 ‘트럼프 집권 2기’ 변수는 산적해 있다. 2019년 하노이 회담은 김정은이 핵을 일부 포기하는 대가로 완전한 경제 제재 중단을 요구하는 바람에 깨졌다. 요즘 트럼프 캠프의 핵심 참모들은 ‘북한이 핵 폐기가 아닌 동결에만 나서도 제재를 풀어주는’ 식의 협상을 두고 “해볼 만하다”라고 말한다. 트럼프 발 안보 위험성은 더 커진 것이다.
트럼프가 “임기 첫날 전기차 보조금 폐기 행정명령에 서명하겠다”라고 공언한 것도 파장을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다. 미국에 막대한 투자를 해온 우리 자동차, 배터리 기업들의 투자전략에 불확실성이 커졌다. 국제사회도 그의 복귀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 트럼프 2기가 동맹에 균열을 내고, 북한과 타협하고, 우리 첨단 산업의 기반을 흔드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비상한 각오로 동맹의 가치를 훼손하는 트럼프식 ‘변칙 외교’ 현실화 가능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
극과 극인 바이든과 트럼프의 정책 방향부터 아직 알 수 없는 제3의 인물이 부상할 경우까지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고 시나리오별로 11월 이후를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이번 토론회 평가만 놓고 보면 트럼프가 높은 점수를 받은 것만큼은 확실하다. 우리 안보에 가장 위험한 상황은 트럼프 재집권 때 벌어질 것이다. 요동치는 미 대선에 불확실성이 한층 커진 만큼 트럼프 2기 출범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는 것에 우리 정부도 세밀한 전략을 세워 대비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