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1990년 한·소 수교 이후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가 ‘무력 침략을 받으면 지체 없는 상호 군사원조’에 합의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북러 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 체결은 냉전 종식 후 폐기됐던 군사동맹을 사실상 부활시켜 러시아가 한반도에 ‘자동 군사 개입’을 할 길을 터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을 되살린 ‘군사동맹’ 성격의 새 조약에 서명하면서 한·러 관계에 대형 악재는 우리 발등에 불똥이 튄 격이 된 것이다.
정부는 이를 엄중히 규탄하고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재검토’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강경한 메시지를 발표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북한과 베트남 순방을 마무리하면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면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푸틴은 북한에 초정밀 무기를 공급할 가능성도 열어뒀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어제 러시아를 향해 “북한에 정밀 무기를 지원하지 말라”고 재차 경고했다. 러시아가 북한에 각종 첨단 무기를 제공하면 우리 정부도 제한 없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러시아가 북한에 고도의 정밀 무기를 준다면,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살상 무기 지원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북한과 러시아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 체결 이후, 한국과 러시아가 강경 발언을 이어가며 긴장을 높이고 있다. 지금은 불필요한 기 싸움이 아닌, 새롭게 전개되는 한-러 관계의 평화적 공존 전략을 심도 있게 세워나가야 할 때다. ‘한계점’을 넘어서고 있는 러시아와 북한의 폭주는 한반도와 글로벌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다. 특히 핵 강국 러시아와 핵·미사일 고도화에 나선 북한의 초밀착은 국제 핵 질서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푸틴 대통령은 귀국 후 “세계 힘의 균형 유지를 위해 3대 핵전력을 추가 개발하겠다”라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략폭격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핵무기 고도화를 예고했다. 러시아로부터 사실상 핵 보유를 용인받은 북한도 핵 개발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조야에서 ‘한반도 핵무장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전술핵 재배치나 핵 공유의 필요성뿐 아니라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론까지 거론될 정도다. 이번 주 한·미·일 프리덤 에지 연합 훈련과 다음 달 미국 워싱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이 러시아에 한목소리로 경고할 필요도 있다.
그렇다고 러시아의 북한 핵·미사일 기술 이전 또는 초정밀 무기 제공은 우리 정부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를 막기 위해 지금처럼 공개 구두 경고를 남발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번 북-러 조약 체결은 외교 참사에 가까운 대러시아 외교 실패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윤석열 정부는 미국 일변도 외교로 대러시아 외교를 사실상 방치했다. 이번 북-러 조약 체결에는 신냉전 구도가 큰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온전히 윤석열 정부 책임으로 돌릴 순 없지만, 우리 정부가 이런 결과가 나오기까지 아무런 제어도 못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대러 외교로 북-러 조약 수위를 낮추지 못했을 뿐 아니라, 회담 뒤에 조약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더니 이젠 대러시아 외교 실패를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카드로 아예 파탄으로 몰아가려 하는 건가. 위태로운 한반도 안보 현실에서 우리가 주권·영토를 수호하면서 지속 가능한 평화 체제를 만들려면 스스로 지켜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는 것이 기본이다.
중장거리 미사일과 핵추진잠수함 개발 등을 서둘러 북러의 어떠한 위협도 물리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 군사력을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핵무장 국가들의 겁박과 위협에 휘둘리지 않도록 전술핵 재배치, 핵 공유 방안 등도 심도 있게 검토할 때가 됐다. 다음 달 미국에서 열릴 북대서양조약기구회의에서 북-러 문제는 중요하게 논의될 것이다. 그 해법을 ‘한·미·일 군사적 강화’를 통해 한반도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는 방안으로만 향하지 말기 바란다. 우리 국익에 조금도 도움 되지 않는다. 러시아에 대해 강온 전략을 동시에 구사하며 주변국 관계도 고려하는 고도의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