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식민지 근대화론


 


2019년 8월 15일은,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배 하에서 벗어난 지 어느 덧 74주년을 맞이한 날이다.

일본과 최악의 경제왜란을 오늘도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식민지 근대화론’을 강변하며 아베와 같이 일제의 군국주의를 향수하며 일본 극우들의 생각을 철저히 대변하고 있는 세력이 우리나라에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고 있다.

‘뉴라이트’ 라고 일컷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이 집필한 ‘반일 종족주의’가 경제왜란으로 힘든 우리들 혈압을 더 높혀 주고 있다.

나는 '반일 종족주의' 그 책을 읽어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책 내용에는 일제 식민지배 기간에 강제징용이나 식량 수탈, ‘위안부’ 등 전쟁범죄는 없었다고 강변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일제 식민지때문에 우리나라가 근대화라는 축복을 받았고 현재 대한민국의 번영은 일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식민지 근대화론'을 철저히 추종하는 자들이다.

특히 이영훈은 과거 ‘위안부’ 피해자들을 성매매에 비유해 파문을 일으켰고 최근 몇 일전에는 그런 질문을 하는 기자를 폭행하여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그럼 이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 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 보자!

미리 말하고 싶은 것은 '일본 종족주의' 라는 책을 읽어 보지도 않았지만 언론에 소개 된 내용만 봐서는 그들의 주장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너무 싫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부 외형적으로나 경제적인 부분에 한 해서는 논리적으로 부인하기 어려운 점은 분명 있다.

민족적인 감정을 떠나 정말 객관적 수치적인 사실로만 본다면 '식민지 근대화론' 도 얼토당토 한 주장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역사학계에는 일제시대가 없었어도 내재적 발전을 할 수 있었으며 일제시대는 수탈의 시대에 지나지 않았다는 중심으로 한 역사 연구가 주류를 이루어 왔다.

이런 흐름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새로운 역사 연구,
우리나라가 식민지 시기 일제에 의해 경제가 성장하고, 근대화의 토대가 마련된 점을 인정하자는 것이 안병직, 이영훈 등 낙성대연구소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식민지 근대화론' 은 조선오백년 역사는 막바지에 와서 썩을대로 썩었고 조선의 지도자들은 무능했고 탐욕스러워 개인 치부에만 눈이 멀어 당시 조선의 상황으로서는 스스로 근대화를 이룰 능력도 의지도 없있다는 것을 첫 번째 근거로 하고 있다.

나는 이 점에서는 '식민지 근대화론' 에 공감이 가고 조금 흔들리고 동의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사실, 민족적 자존심을 떠나 그 당시 조선 지도부의 행태를 자세히 살펴보면 '식민지 근대화론' 이 들의 주장도 쉽게 무시하기 힘들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식민지 근대화론' 자들은 “개항이 한국적 근대의 기점이었다면, 식민지 초기 1905년∼1918년 간 일제에 의해 화폐·금융·재정의 근대적 제도가 이식 되었고, 토지조사사업에 의해 근대적 사유재산제도가 확립됨으로써 자본주의 제도적 형식의 제1단계가 성립하였다" 고 주장하고 있다.

또 그들은 "서유럽이 장기간의 이행과정에서 성취한 근대의 형식·제도가 조선에서는 불행하게도 스스로 전통에 의해 재규정된 형태로 소화되지 못하고 순전히 외래적인 근대로, 그래서 역설적으로는 가장 선진적인 형태 그대로 이식된 것이다.”(이영훈, 1996)라고 하여 일제에 의한 조선의 식민지화 과정을 서구의 자본주의가 한국사회에 도입되고 정착하는 과정으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일제침략기가 되면 “근대적 제도의 정비에 따라 식민지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이영훈, 1996)고 평가하였다.

쉽게 다시 말하자면 '서구는 오랜 시간과 여러 갈등을 겪으면서 이룩한 근대화와 자본주의 사회가 조선에서는 일제라는 거대한 힘에 의해 압축적이고 단기간에 손쉽게 이루어 졌으니 일제에 의한 식민지 지배는 조선으로서는 축복이라는 것이 '식민지 근대화론' 자들의 주장인 것이다.

하지만 이 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문명은 선진문명에서 후진문명으로 흐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개항을 했다. 서구문물을 받아 들여 근대화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당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미국이나 서구 국가들이 일본을 개항시키고 일본의 근대화를 도와주면서 일본 국토를 유린하거나 식민지 화 시키지는 않았다.

일제가 당시 조선에 미국이나 서구 국가들이 일본에 했듯이 도움을 주고 근대화 시켰다면 우리나라는 일본을 지금도 고마워 할 것이다.

그러나 일제는 형식적으로는 조선이 합병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하여 조선에게 해서는 안 될 여러 술책들을 써서 합병을 하고 식민지 화 했다.

그리고 합병 후에는 그 기간 내내 조선을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병참기지 화 했고 여러가지로 수탈을 자행했다.

식민지 근대화론 자들은 일제가 돈을 주고 사갔으니 수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당시에 엄청난 갑을관계에 있었던 일제와 조선사이에서 돈 몇 푼 던져주면서 조선의 소중한 물자를 일제가 착취한 것인데 수탈이 아니라고 주장하니 기가 막힌다.

그들은 위안부 할머니들도 그 녀들이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나선 창녀였을 뿐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으니
속이 다 뒤짚어 지는 느낌이다.

또 일제는 3.1운동에서 보듯이 조선인들을 엄청나게 학살하기도 했다.

일제는 조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륙 진출을 쉽게 하기위해 조선에 철도 등 기간시설을 확충했다. 또 식민지 백성들을 부려 먹기 쉽게 하기위해 행정, 교육 제도나 시설도 정립한다. 치안문제도 확립하고 여러 구태를 청산한다. 이러한 외형적인 것으로만 보면 일제시대에 조선이 확 바뀌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철저하게 일제를 위한 거였다.

일제는 조선백성들의 편이 아니었다.

조선의 신분제도는 법적이나 형식적으로 바뀌었지 일제강점기에도 그대로 진행 되었다. 조선시대 양반 대지주들은 그대로 존재하게 했다. 조선을 배신하고 매국하는데 앞장 선 민족반역매국노들을 잘 먹고 잘 사게 했다. 그리고 친일파들을 대량으로 양성했다.

결론은 외형상으로는 일제에 의한 '식민지 근대화론'이 조금은 먹혀 들 수도 있지만 내적으로는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조선 스스로 '내재적 발전론'이 가능했을까? 를 생각 해 보자!

나는 당시 조선지도층으로서는 불가능 했다고 본다.

그러나 조선에는 나라의 위기가 발생하면 벌떡 일어서는 현명한 백성들이 있었다. 무능하고 탐욕스런 지도층만 있었던 게 아니다.

갑오동학농민혁명!

일제만 개입 안 했으면 성공했을 것이다.

당시 동학지도부들에게도 조금의 의식의 한계는 있었지만 이 혁명이 성공하여 개혁을 해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다면 내재적 발전론은 충분히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 싹을 잘라 버린 것이 일제였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안타갑고 아쉬운 일이었다.

이러한 것은 보지도 생각지도 않으려 하면서 단지 식민지 기간 동안의 조선이 외적으로 크게 변했다는 것만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본과 합병을 찬성하고 앞장 섰던 이완용, 송병준 등 '친일민족반역매국노' 와 다를 것이 전혀 없다.

이영훈은 현재도 '식민지 근대화론'은 학문적 '연구 결과'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영훈의 논리는 구한말 당시 조선을 삼키고 현재도 대한민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아베를 비롯한 일본 극우 세력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일본 극우세력 보다 더 강하게 그들을 대변하고 있다.

이영훈이 요즈음 하는 짓거리는 제 2의 이완용, 송병준이 되어 가고 있을 뿐이다.

한 나라 역사에는 민족의식과 민족의 정기가 중요하다.
민족주의적 국수주의 입장이 아니라 한 국가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최소 필수조건이다.

구한말 당시 조선상황이나 조선지도부들의 행태 등 객관적 사실이 외형상으로는 '식민지 근대화론' 에 조금 부합될 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를 내부 깊은 사관(史觀)으로 보자면 '식민지 근대화론' 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다.

이영훈등은 진짜 요즘말로 지난 날 일제의 군국주의를 향수하는 아베같은 토착왜구에 지나지 않는다.

현) 담양군청 참여소통담당관 박철홍

9,10대 전남도의원
10대 전남도의회 운영위원장
전국운영위원장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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