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휴전과 평화 협상의 걸림돌일 뿐

 

이준석 국민의 힘 대표가 우크라이나를 방문하고 젤렌스키 대통령과도 면담하고 돌아왔다. 국민의 힘 내부에서 ‘자기 정치’를 한다는 뒷말도 나오지만, 집권당 대표의 예사롭지 않은 행보가 국제사회에 던질 파장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하여 한국의 여당 대표가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는 것이 왜 필요한가? 과연 우리의 국익 확보 또는 증진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그러한 방문이 대통령이 당대표 이야기를 듣고 바로 결정할 사안인가? 새 정부의 외교에 러시아는 없는가?

 

정부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관련해 가능성을 열어 놓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러시아와의 외교적 관계보다는 국제사회의 우리나라 입지와 향후 우크라이나 재건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풀이되지만 새 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한미동맹의 회복, 나아가 강화라는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거듭된 요청에도 인도적 차원에서 의약품이나 헬멧, 방탄조끼 등 비살상용으로 지원을 한정했다. 그러나 윤 정부에서 우려스러울 만한 변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에게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과 관련한 구체적인 제안을 내놨고, 이에 이 대표는 "교류, 지원, 협력 방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잘 전달하겠다"고 화답했다고 허은아 수석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으로 전했다.

 

우크라이나 인접국이자 서방 쪽 지원창구인 폴란드 국방부 장관이 내한해 국내 유수 방산 업체를 둘러보고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만나 ‘모종의 의향서’에 서명하면서 의구심은 더욱 증폭됐다. 브와슈차크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경남 사천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와 한화디펜스 창원공장, 창원 현대로템 공장 생산설비를 시찰했다. 그는 FA-50 경공격기, K9 자주포와 각종 장갑차, K2 전차 등에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정부는 쉬쉬했으나 폴란드 국방부의 보도문을 통해 국내에 공개됐다. 이종섭 장관과 브와슈차크 장관이 서명한 ‘의향서’에는 수출할 우리 무기의 목록과 수출조건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가 이러한 ‘살상 무기 우회 지원’을 그대로 두고 볼지는 의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백번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한때 소련연방국이었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는 단선적으로만 봐선 안 된다.

 

나토의 동진에 위협을 느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완충지대로 묶어두려는 것에 맞서 나토가입을 서두른 젤렌스키 대통령의 성급한 판단이 침공을 초래한 점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국제정치는 냉혹하고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약점’이 많아 서방 유럽국가들과는 처지가 다르다. 미국의 충실한 동맹국인 이스라엘 등이 국익 차원에서 러시아 직접제재에 참여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도 어느 정도 용인하는 상황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장기전이 될 것이란 전망 속에서도 나토 회원국인 독일이나 프랑스가 앞장서 휴전을 모색하고 있다. 사실 미국도 언제 발을 뺄지 알 수 없다. 바이든 정부가 언제 출구전략을 모색할지 모른다. 그런 ‘강대국 놀음’을 익히 봐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돌격대를 자처하는 것은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격’이다.

 

현 상황에만 매몰되지 말고 길게 봐야 한다. 러시아는 한반도평화 유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변 강대국이다. 한반도 6자회담 당사국이었으며, 한국에 우호적 태도를 견지해 왔고 한국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다. 우회 수출이 거론되는 우리 무기들 대부분이 러시아제 무기와 기술을 기반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것임도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의 압력에 떠밀려 우크라이나전쟁에 무기 지원으로 깊이 발을 담그는 것은 사안에 걸맞게 치밀한 검토와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 길게 봐 국익에 맞는지, 한반도평화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밀실에서 결정할 일이 아니다.

정부는그동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금까지 약 4000만 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해왔다. 우크라이나 측은 여기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도 한국의 무기 지원을 지속해서 요구해왔다.

 

도대체 우크라이나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가까운 우방도 아니고 오히려 북한에 ICBM 및 SLBM 기술 전수 의혹이 있고 독도 문제에 있어 일본 쪽에 기우는 태도를 보이는 나라이다. 지난 30년간 대한민국 대통령이 방문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국가이다.

 

한국시민단체 들은 31일 공동성명을 내고 “더 많은 국가의 더 많은 군사적 개입은 전쟁을 격화하거나 확대하고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남길 것”이라며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입장을 지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외교의 세계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는 세계이다.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체계가 안 잡혔을 수 있겠는데 만일 그렇다면 하루바삐 체계가 잡히고 국익과 가치가 균형을 이루는 외교가 전개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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