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시대, 서민들의 한을 울린… ‘천하명창 임방울’의 서편소리 <전편>

강물이 감고 도는 비옥한 땅인 까닭에 예로부터 문명이 발달하여 지금도 마한의 고분이 대량으로 발굴되는 영산강 일대. 영산강은 담양 용추봉에서 발원하여 광주, 나주, 무안을 거쳐 목포에서 바다를 만난다. 판소리를 산소리와 마당소리, 또는 동편과 서편으로 나누었던 옛구분에 따르면 마당 소리이자 서편 소리권에 속하는 광주의 서남부와 나주는 암울했던 일제하 전국을 순회하며 서민들의 삶과 눈물을 함께 나누었던 명창들의 고향이다.


박유전으로부터 시작한 서편소리는 이날치, 정창업, 정재근에게 전해져 전승의 줄기를 형성한다. 이 중 정창업에게 전해진 소리가 영산강을 낀 광주의 서남부 지역과 나주 일대를 중심으로 김창환과 인간문화재 정광수 등에게 전승된다. 그리고 그 끝에 국민들의 가슴을 울렸던 임방울이 있다.


‘쑥대머리’는 갖은 고초를 겪고 옥중에 갇힌 춘향의 형상을 일컫는 말이다. 임방울이 부른 춘향가 중 옥중가의 부분인 ‘쑥대머리’ 음반은 암울했던 일제시대 무려 120만 장이라는 음반판매를 기록했다. 그 때문일까? 백발서린 노인들의 입에서 구성지게 나오는 쑥대머리는 어느 향촌에 가든 들어볼 수 있는 판소리 한 자락이다.


임방울(본명 승근)은 1904년 4월 25일 전남 광산군 송정면 도산리 679번지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가는 현재 광주공항에 편입되어 있어 옛 모습을 확인할 수 없다. 제적부에 기록된 임방울의 출생년은 1905년 4월 20일이나 임방울의 장녀 임오희 여사가 천이두 교수에게 보낸 편지에 부친의 생일을 1904년이라 했다는 점을 보면 제적부의 기록은 오기로 보인다. 그리고 제적부에는 임방울이 4남 2녀 중 4남이며, 이외에 이복동생이 1명이 더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임방울의 형과 누나가 되는 임경학의 2남과 장녀에 관한 내용은 없다.

 

임방울의 부친 임경학은 농부였고, 모친 김나주는 무업에 종사했다. 또한 국창 김창환이 임방울의 외숙이 된다고 전하는 바를 보면 임방울의 음악성은 예인 집안의 혈통적 유전에서 비롯되었다. 한데 임방울의 모친 김나주(부 김원대, 모 오공촌)와 김창환(부 김천경, 모 박씨)의 부모 성명이 다른 것을 보면 임방울의 모친과 김창환이 친 남매간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1986년에 건립한 ‘국창 임방울선생 기념비’는 도심에 둘러싸인 광주시 광산구 소촌동 송정공원의 비탈에 숨죽이고 서있다. 임방울명창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기념비와 동상을 건립했고 1997년부터 명창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1999년부터 ‘국창임방울선생기념문화재단’을 창립하여 임방울명창의 삶과 예술적 가치를 재조명하고자하는 노력을기울이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광산구 문화회관 2층에 생전에 임방울이 쳤다는 북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어 있으며, 재단에서는 임방울의 삶과 예술을 재조망하는 일대기 편찬과 음반제작을 준비 중이다.


임방울의 북을 만지작거리다 다음 목적지를 향해 문화회관을 나오는 길, 한켠에서 판소리강습이 한창이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취미로 소리를 배우는 사람은 극히 적었을 것이다.

 

임방울은 소리를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스승의 집 헛간 안에서만 3년을 보냈었다 한다. 그의 소리 선생은 김창환, 박재실, 공창식, 유성준 등으로 알려져 있는데, 임방울의 소리학습에 관한 내용은 연구자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다. 박재실과 공창식에게는 12세~14세 무렵 춘향가와 흥보가를 배웠고, 유성준에게는 17세 무렵인 1920년경부터 수궁가와 적벽가를 배웠다 함은 공통된 의견이고, 김창환에게 사사 받은 적이 있는지의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생전에 임방울이 외숙 김창환에게 귀동냥을 했다고 공창식에게 이야기했다는 내용은 체계적인 소리학습은 없었더라도 최소한 인근에 거주했던 국창 김창환의 법제를 접했던 것으로 짐작케 한다.

 

또한 공창식은 박유전-이날치-김채만의 법통을 잇는 서편 명창이며, 유성준은 송흥록-송우룡으로 이어지는 동편 명창이니 임방울은 동·서편을 두루 섭렵한 명창이라 할 수 있다.


임방울의 목은 타고난 천구성이라 하나, 이는 선천적인 요인보다는 각고의 노력에서 비롯된 결과로 보인다.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는 쉬지 않고 목을 놀렸다는 이야기는 생전에 그를 접했던 많은 이들로부터 전할 뿐더러, 유성준과의 학습과정에 얽힌 이야기는 임방울이 소리를 얻기위해 어떻게 노력했는가 하는 단면을 잘 보여준다.


천이두 선생의 저서 ‘천하명창 임방울’에서 이렇게 임방울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소리를 질러대고 있으면 눈앞이 아찔할 정도의 몹시 더운 여름날, 선생은 무슨 볼일이 있어서 나들이를 갔다. 제자들은 이 기회를 틈타 밖으로 나갔으나 임방울만이 자리를 지키며 받은 소리를 되새기고 있었다.

 

오랜시간이 지나 선생이 돌아와 보니 임방울만 방에 있을뿐, 나머지는 그늘에서 주위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성난 선생이 자고있던 제자들을 소리방으로 모아놓고 소리를 시켜보니 소리가 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임방울이 쏟아내는 수궁가 중 고고천변을 들으며, 선생은 자고있던 이들을 사납게 매질했던 마음을 풀고 추임새를 곁들였다. 소리가 끝나고 임방울의 어깨를 안은 선생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힌다.

 

조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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